아름다운 우리말, 새언니와 아가씨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

작성일 : 2026.10.29 14:11 수정일 : 2026.10.29 15:18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오늘은 며느리의 생일이다. 가족 단톡방에 다음과 같은 축하 글을 올렸다.

= “♡ ○○(손자) 엄마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늘 건강하고 화목한 ○○이네를 축복합니다. ♡” =

 

그러자 딸과 아내도 곧장 축하의 글과 꽃바구니 그림 등을 올려 잔치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잠시 후 아들과 며느리에게서도 고맙다는 답신이 왔다.

 

특히 딸은 “새언니 생일 축하합니다! ○○이랑 오빠랑 함께 즐겁고 행복한 하루 보내기를 바라며(사랑)”라는 글을 올려 더욱 정겨웠다.

 

아들은 결혼한 지 얼추 10년에 육박한다. 그런데도 딸이 오빠의 아내를 부르는 호칭은 여전히 ‘새언니’다. 사전적 의미로 새언니는 여자가 오빠의 아내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다.

 

본래 갓 시집온 오빠의 아내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세월이 흘러도 가족 안에서는 변함없이 쓰이는 정겨운 호칭이다. 이에 대적(?)하는 호칭도 있다.

 

며느리는 내 딸을 여전히 ‘아가씨’라고 부른다. 아가씨는 손아래 시누이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기도 하고,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며느리에게 딸은 시누이이고, 딸에게 며느리는 새언니다. 서로 다른 위치에서 부르는 말이지만, 그 안에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와 예의가 담겨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말에는 이처럼 관계를 섬세하게 구분하면서도 정감을 불어넣는 호칭이 참 많다. 아버지의 누나는 고모, 어머니의 여자 형제는 이모다.

 

아버지의 남자 형제는 큰아버지나 작은아버지라 부르고, 어머니의 남자 형제는 외삼촌이라 부른다. 단순히 남자와 여자, 나이가 많고 적음만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관계의 맥락까지 말 한마디에 담아낸다.

 

가족 밖으로 눈을 돌려도 아름다운 호칭은 이어진다. 남편의 부모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아내의 부모는 장인과 장모라 부른다. 남편의 형제자매를 부르는 말과 아내의 형제자매를 부르는 말도 각각 다르다.

 

복잡해 보이지만 그만큼 우리 조상들이 인간관계와 예절을 세심하게 살폈다는 방증이 아닐까. 사람을 가리키는 순우리말도 곱다.

 

‘벗’은 마음을 나누는 친구를 뜻하고, ‘길동무’는 함께 길을 가는 사람이다. ‘말벗’은 말 상대가 되어 주는 사람이며, ‘책벗’은 책을 가까이하며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는 벗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한솥밥을 먹는 사이’라는 표현에는 같은 공동체에서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미가 담겨 있다. 또한 ‘어른’이라는 말에는 나이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게가 있다.

 

그런데 나이가 많다고 모두 어른다운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질 때 비로소 존경받는 어른이 된다. ‘이웃사촌’ 역시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는 아니지만, 가까이 살며 서로 돕고 정을 나누는 이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운다.

 

물론 호칭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과거에는 자연스러웠던 표현이 오늘날에는 부담스럽거나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어쨌든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킨다는 것은 옛 호칭을 무조건 고집하는 일이 아니다.

 

상대방의 뜻을 존중하면서 말에 담긴 정과 예의를 살리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딸이 며느리를 ‘새언니’라고 부르는 모습이 참 좋다.

 

결혼한 지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새언니라는 호칭을 놓지 않는 데서 가족의 따뜻한 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며느리가 딸을 ‘아가씨’라고 부르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서로를 부르는 말이 정겨우면 마음의 거리도 그만큼 가까워진다.

 

세월이 흐르면 새언니라는 말의 ‘새’가 지닌 의미는 빛바랠지 모른다. 하지만 가족을 향한 애정까지 낡아질 이유는 없다. 오히려 오랜 세월을 함께할수록 호칭 속에 담긴 정은 더욱 깊어질 수 있다.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사람을 부르는 말 한마디에도 존중과 사랑을 담을 수 있다. 오늘도 나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생각한다. 그리고 바란다. 우리 가족의 입에서 ‘새언니’와 ‘아가씨’라는 정겨운 호칭이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영원한 새언니, 변함없는 아가씨. 아름다운 우리말은 결국 아름다운 사람 사이에서 완성된다.

 
네이버 카카오톡 라인 밴드 페이스북 X 스크랩주소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