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황금알 낳는데 서민 삶은 왜 팍팍해지는가
작성일 : 2026.10.30 07:28 수정일 : 2026.10.30 08:56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대한민국 경제의 견인차인 반도체 산업에 유례없는 훈풍이 불고 있다. 국내 반도체 양강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AI) 열풍과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 수요 증가에 힘입어 초호황을 누리고 있다.
천문학적인 실적을 바탕으로 양사의 주주환원 규모 역시 210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그야말로 반도체가 대한민국 경제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더욱 자리매김한 셈이다.
그러나 화려한 경제지표 뒤편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반도체 기업의 실적 잔치는 온 국민의 축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
새벽부터 거리로 나서 폐지를 줍는 노인들의 고단한 행렬은 여전하고, 일자리를 찾아 인력시장을 서성이는 사람들의 어깨에는 한숨이 쌓인다. 기업의 곳간은 두둑해지는데 서민의 지갑은 오히려 얇아지는 패러독스(역설)이다.
여기서 문득 조선시대의 자매문기(自賣文記)가 떠오른다. 자매문기란 극심한 빈곤이나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자신 또는 가족을 노비로 팔면서 작성했던 문서다. 매수자와 매도자의 이름은 물론 매매 사유와 가격, 증인의 서명까지 기록했다.
경제적 궁핍이 인간의 존엄성마저 위협했던 시대의 아픈 증거다. 반면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 양인이 되는 과정을 기록한 속량문기(贖良文記)는 그와 대조되는 문서다.
물론 오늘날 대한민국을 조선시대 신분제 사회와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 법적으로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이다. 그러나 경제적 빈곤이 사람의 선택권을 빼앗고 삶의 가능성까지 제한한다는 점에서는 자매문기의 비극과 닮은 구석이 있다.
빚에 허덕이고 주거비와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해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는 현실이 그렇다. 신분제의 굴레는 사라졌지만 가난이라는 또 다른 굴레가 서민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우선 경제성장의 과실이 특정 기업과 자본에만 집중되지 않도록 사회적 분배구조를 정비해야 한다. 기업의 성과가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협력업체의 동반성장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경쟁력을 높이고, 고령층과 취약계층을 위한 실질적인 사회안전망도 강화해야 한다. 단순히 현금을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일자리와 안정적인 노후소득을 보장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성장의 성적표를 국민의 삶에서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수출액과 주가지수, 기업의 영업이익이 아무리 치솟아도 서민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그것을 온전한 경제적 성공이라 부르기 어렵다.
반도체는 미래산업의 쌀이다. 그러나 국민의 밥상에 쌀이 부족하다면 아무리 반도체가 세계시장을 석권해도 그 영광은 절반에 불과하다.
조선시대 자매문기가 빈곤의 굴레를 기록한 문서였다면, 21세기 대한민국은 누구도 가난 때문에 삶의 존엄성을 저당 잡히지 않는 사회를 기록해야 한다. 진정한 경제 초호황은 기업의 곳간이 넘칠 때가 아니라 국민의 얼굴에 웃음꽃이 필 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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