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솔로몬 공주
작성일 : 2026.10.31 06:54 수정일 : 2026.10.31 21:33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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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혜로운 솔로몬 공주 모습을 ai 이미지로 생성 |
우리 집은 방이 세 개인 빌라다. 아내는 안방을 사용하고 나는 건넌방을 쓴다. 나머지 방 하나는 책과 각종 살림살이가 차지하고 있어 사실상 창고나 다름없다. 그러다 보니 명절이나 가족 모임 때 아들과 딸네 식구가 찾아오면 잠자리는 자연스럽게 거실로 밀려난다.
지난 여름방학 때의 일이다. 초등학교 1학년인 외손녀가 서울에서 내려왔다. 서울역으로 마중 나온 딸에게서 외손녀를 인계(?)받아 내가 직접 데리고 왔다.
친할머니 집에서 며칠을 묵었다 왔다기에 외할머니 집에서도 그에 못지않은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 외손녀를 향한 외할아버지의 사랑이 발동한 셈이다.
그런데 이틀째 되던 날, 외손녀가 아내에게 뜻밖의 제안을 했다. "할머니, 친할머니 집은 이 집보다 훨씬 큰데 거기는 할머니 혼자 살잖아요. 그러니까 내 생각에는 서로 집을 바꿔서 살면 훨씬 편하지 않을까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웃음 뒤에는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기발함이 숨어 있었다. 어린아이가 어른들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집은 식구가 여럿 모이면 잠자리부터 불편해진다. 반면 친할머니는 넓은 집에서 혼자 생활하신다. 그렇다면 집을 바꾸어 살면 서로에게 이롭지 않겠느냐는 것이 외손녀의 논리였다.
복잡한 이해관계도, 부동산 시세도, 소유권 문제도 따지지 않았다. 오로지 생활의 편리함이라는 관점에서 내놓은 순수하고도 합리적인 발상이었다. 그래서 문득 성경에 등장하는 솔로몬 왕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 현명한 판단력을 얻은 왕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한 아이를 두고 두 여인이 서로 자기 아들이라고 주장하자 아이를 둘로 나누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진짜 어머니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차라리 다른 여인에게 주라고 호소했다. 솔로몬은 그 반응을 통해 진짜 어머니를 가려냈다. 이 일화는 오늘날까지도 지혜로운 판단의 대명사인 '솔로몬의 지혜'로 회자된다.
물론 외손녀의 제안과 솔로몬의 판결을 같은 차원에 놓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어린아이가 보여준 발상의 전환만큼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었다. 어른들은 불편한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아이는 그 현실에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나이가 많다고 반드시 지혜로운 것도 아니고, 배운 것이 많다고 언제나 현명한 것도 아니다. 때로는 세상의 복잡한 셈법을 모르는 어린아이의 눈이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는다.
생각해 보니 우리 외손녀는 단순히 귀엽기만 한 아이가 아니었다. 어른들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기막힌 발상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내가 붙여준 별명이 있다. '현대판 솔로몬 공주!'
집을 바꾸어 살자는 그 제안이 실제로 성사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외손녀가 남긴 지혜의 여운은 오래도록 우리 가족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진정한 지혜란 어려운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질문 하나에도 삶을 바꾸는 통찰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외손녀에게 한 수 배웠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선생님에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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