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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솔 정규영,공학박사 사회복지학박사,시인 수필가 평론가 |
빗소리
정규영 시인
빗방울 방울마다 어린 날의 숨결 담고
멈춘 호미 끝에 책장이 조용히 열리며
시험을 앞둔 소년의 작은 꿈 품어 주던
그날의 빗소리는 오늘도 마음을 적신다
강물이 흘러 흘러 세월 풍경 변했지만
창가 머문 빗소리 변함없는 샹송되고
멀리 물안개 가득한 산마루 바라보던
고향 추억 한 편을 가슴 깊이 불러낸다
혜솔 정규영 시인
시인 / 수필가 / 평론가
*자평
1. 창작노트
「빗소리」는 어린 시절 농촌에서 살아온 삶의 기억을 담담하게 풀어낸 자전적 서정시이다. 농사일이 일상이었던 시절, 비가 오는 날은 들일을 잠시 멈추고 책을 펼칠 수 있었던 특별한 시간이었다. 빗소리는 단순한 자연의 소리가 아니라 꿈을 품게 한 쉼의 시간이었고, 미래를 향한 희망을 키워 준 조용한 스승이었다.
세월은 흘러 삶의 풍경도 달라졌지만, 빗소리만은 변함없이 마음속 고향을 찾아오게 한다. 창가에 스며드는 빗방울 소리는 물안개 피어오르는 산마루와 흙내음을 함께 불러오며, 오래도록 가슴에 간직해 온 어린 날의 추억을 다시 펼쳐 보인다.
이 작품은 비를 노래하는 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성장시킨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 시간을 가능하게 했던 자연에 대한 감사의 기록이다.
2. 문학평론
「빗소리」는 자연과 기억, 노동과 배움, 과거와 현재를 하나의 정서로 엮어 낸 회상 서정시이다. 시인은 빗소리를 단순한 자연 현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삶을 성장시킨 시간의 상징으로 형상화한다. 따라서 작품 속 비는 쉬어 가는 날씨가 아니라 꿈을 키우게 한 은혜로운 시간이며, 현재의 삶을 위로하는 기억의 음악으로 기능한다.
첫째 연은 현실과 희망이 교차하는 공간을 섬세하게 보여 준다. ‘멈춘 호미 끝에 책장이 조용히 열리며’라는 표현은 노동의 현장에서 배움의 세계로 넘어가는 순간을 상징적으로 담아낸다. 호미와 책장은 서로 다른 삶의 영역을 대표하지만, 이 시에서는 대립하지 않고 하나의 성장 과정으로 연결된다. 짧은 한 행이 어린 소년의 꿈과 시대적 현실을 함께 품어내는 작품의 중심 이미지라 할 수 있다.
둘째 연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기억의 지속성을 노래한다. ‘창가 머문 빗소리 변함없는 샹송되고’는 빗소리를 음악으로 승화시킨 핵심 구절이다. ‘샹송’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세월을 견디며 마음속에 남아 있는 삶의 선율을 상징한다. 이어지는 ‘멀리 물안개 가득한 산마루 바라보던’은 공간적 원근감을 형성하며, 창가에서 바라본 고향의 풍경을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 보인다. 마지막의 ‘고향 추억 한 편’은 기억을 한 편의 문학으로 승화시키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절제의 미학에 있다. 조사를 과감히 덜어내고 설명을 줄임으로써 언어는 더욱 응축되었고, 독자는 그 여백 속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과 고향을 떠올리게 된다. 감정을 직접 호소하기보다 이미지로 말하는 힘이 작품 전반을 지배하며, 담백한 언어 속에서 오히려 깊은 울림을 만들어 낸다.
「빗소리」는 한 사람의 성장사를 회고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고향의 빗소리’를 불러내며, 지나간 시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가장 따뜻한 기억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 준다. 절제된 언어와 진정성 있는 체험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깊은 서정성을 지닌 작품이다.
3. 총평
이번 「빗소리」는 체험의 진정성과 시적 절제가 가장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멈춘 호미 끝에 책장이 조용히 열리며’는 이 작품을 대표하는 핵심 시구입니다. 농촌 소년의 현실과 배 움에 대한 열망을 한 장면으로 압축해 낸 뛰어난 이미지이며, 독자의 기억에도 오래 남을 만한 힘을 지니고 있 습니다.
또한 ‘창가 머문’, 샹송되고’와 같은 표현은 문법적 엄밀함보다 시적 운율과 함축성을 선택한 결과로, 작품 전체의 호흡을 한층 더 깊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평론가 혜솔 정규영
*시인.수필기.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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