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을 만나면 내게 무엇이 남을까?" "내가 봉사하면 어떤 보상을 받을까?"
작성일 : 2026.06.14 23:04 수정일 : 2026.06.14 23:27
작성자 : 계석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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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재성 목사 (함께하는교회) |
보이는 것이 달라서입니다
잃어버린 양의 비유 (눅 15:1-7)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순간 계산기를 두드리며 살아갑니다.
주차비 몇 천 원을 아끼려다 골목길을 헤매고, 배송비를 아끼려다 필요 없는 물건을 사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런 계산이 소비생활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에서도, 교회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손익을 따집니다.
"저 사람을 만나면 내게 무엇이 남을까?" "내가 봉사하면 어떤 보상을 받을까?" "굳이 내가 해야 하나?"
계산기를 두드릴수록 사랑은 점점 작아집니다. 손해 보기 싫어지고, 기다려 주기 싫어지고, 품어 주기 싫어집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계산기를 뒤흔드는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목자는 백 마리 양 가운데 한 마리를 잃었습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한 마리보다 아흔아홉 마리를 지키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하지만 목자는 아흔아홉 마리를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아 나섭니다.
왜 그럴까요?
보이는 것이 달라서입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숫자를 보지만 목자는 잃어버린 양을 봅니다.
우리는 손실된 1%를 보지만 목자는 이름 있는 한 생명을 봅니다.
우리는 통계를 보지만 목자는 존재를 봅니다.
만약 그 잃어버린 양이 내 자녀라면 어떨까요? 아무도 "99명이 남았으니 괜찮다"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을 보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사람을 의인과 죄인으로 나누며 세리와 죄인들을 이미 포기한 사람들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사랑의 대상으로 바라보셨습니다.

오늘날 봉사자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한 반찬 봉사, 장애인 섬김, 노숙인 지원과 같은 일들은 효율만 따지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도 크지 않고, 보상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봉사자들이 섬길 수 있는 이유는 숫자가 아니라 얼굴을 보기 때문입니다.
독거노인 몇 명이 아니라 외로운 한 사람을 보고, 소외계층 몇 가구가 아니라 위로가 필요한 한 사람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봉사자들은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습니다.
몇 명이 변화되었는가보다 한 사람이 사랑받았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사랑은 언제나 숫자를 얼굴로 바꾸어 놓습니다.
목자는 잃어버린 양을 찾은 뒤 그 양을 어깨에 메고 돌아왔습니다. 양의 잘못을 따지지 않았고, 수고를 계산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기뻐했습니다.
이 모습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치가 있어서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셨기에 가치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돌아올 수 없을 때 먼저 찾아오셨고, 우리의 죄와 상처를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세상은 효율을 말합니다. "1을 버려야 99가 산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산수는 다릅니다.
"한 사람을 포기하는 순간 모두의 가치가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숫자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얼굴을 기억합니다.
사랑은 통계를 보지 않습니다.
사랑은 이름을 부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오늘도 잃어버린 한 사람을 찾아 나서는 목자처럼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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