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4-03-16 08:11 수정일 : 2024-03-16 09:42 작성자 : 김상호 (sangho5747@hanmail.net)

칼럼니스트 김상호
최근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를 여행했다”는 제목의 한국 관련 유튜브 영상이 화제다. 미국 베스트셀러 ‘신경 끄기의 기술’(2016년)의 저자 마크 맨슨이 여행기 형식으로 한국 사회의 극심한 경쟁과 정신건강 문제 등을 짚은 영상이다. 착점이 흥미롭다. 신경끄기의 기술이란 책을 통해 필자는 한동안 강의소재로 삼아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해소키 위한 방법으로 강연을 해온적이 있었다. 이번 여행기도 같은 맥락에서 제작 되어진 느낌이였다.
영상 도입부는 아파트 이층 침대에서 합숙했던 과거 스타크래프트 게임 프로팀의 집중 훈련을 소개한다. 한국의 케이팝 스타나 운동 선수, 첨단 기술도 이 같은 경쟁 압박을 통해 세계 무대에서 성공했다는 것. 하지만 ‘100점이 아니면 0점이나 마찬가지’라는 식으로 도태되는 이를 양산하는 부작용을 만들었다는 비판이다.
우울증을 경험하는 사람들 중에서 일부는 자살시도를 한다. 자살 원인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우울증이다
우울증은 자살의 원인인가? 물론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이는 굉장히 단편적인 관점이다. 우울증과 자살의 관계는 좀 더 복잡하고 미묘하다. 우울증이 삶에서 활력을 앗아간다면 자살은 삶을 끝내기 위해 강한 결단력과 힘을 필요로 한다
영상은 한국 사회가 물질주의와 돈벌이를 강조하면서도 개인주의와 자기표현은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실 한국인이 물신을 숭배해서 그런 게 아니다. 양극화한 노동 시장이 고착돼 모두가 소수의 대기업 정규직이 되기 위해 달려야 하는 탓이다. 선점한 이들만 ‘지대(地代)의 이익’을 누리다 보니 영상 속 전문가의 말처럼 많은 이들이 ‘항상 실패의 느낌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구조는 이 사회에서 ‘사람답게’ 살지 못 할 것 같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자리한다. 사람을 사람으로서 환대하지 않고 수단으로만 취급하는 사회에 대한 불신과 절망이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높은 자살률에 대한 한국 사회의 낮은 관심은 시사적이다. 태어나지 않은 이에 대한 많은 말들과 근심과 조바심에 비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에 대한 고민과 걱정은 놀라울 정도로 적다. 한국 사회가 전통적으로 자살을 금기시하기는 했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치솟은 자살률이 그 후로도 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순위를 차지해 왔음에도 이에 대한 심도 있는 사회적 논의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왜일까? 나는 그 이유를 사람의 도구화에서 찾는다. 저출산을 사회 문제의 원인으로 보는 발상과 같은 맥락이다. 이런 면에서 낮은 출산율과 높은 자살률은 사람을 도구로만 대하는 이 사회에 대한 통렬한 문제제기인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 사회는 압축적 발전을 하며 사회가 져야 할 책임을 가족에게 지워 왔다. 가족 안에서 특히 여성이 양육을 하며 미래 노동력을 키웠고, 살림을 하며 현재의 노동력을 재생산했고, 노인을 부양하며 과거의 노동력을 책임졌다. 하지만 과거 한국 사회는 이를 무시했다. 노동력이 스타크래프트의 SCV(일꾼)처럼 마우스를 클릭하면 만들어지는 셈 쳤다. 그러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고 가장이 가족을 부양하는 구조가 해체되면서 각종 사회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서 하루 평균 36.6명 자살…OECD 국가 중 1위
한국에서 하루 평균 36.6명이 자살한다. 한국은 2003년부터 2020년까지 2017년 단 한 해를 제외하고는 줄곧 OECD 국가 자살률 1위를 지키고 있다. 그중에서도 노인자살률은 압도적이다. 보건복지부의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자살률(인구 10만 명당)은 2015년 58.6명으로 OECD 평균 18.8명보다 훨씬 높고 2위인 슬로베니아 38.7명과도 격차가 크다.
강대국인 미국도 우리보다 심한 경제적 불평등과 인종 마약 이민 범죄 총기 등 많은 사회문제를 갖고 있다. 우울증 유병률도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라는 말은 충격 요법으로 받아들여도 좋겠다. 제작자 맨슨의 격려 섞인 믿음처럼 ‘우리는 길을 찾을 것이다’. 관용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삶이 각자의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개성적으로 살아도 먹고살 수 있어야 한다. 패자가 부활할 수 있게 안전망도 촘촘히 구축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응답하는 것으로부터 새로운 정치가 시작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