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뉴스라인 연재 김상호시인의 감성채움 서사시 [ 금이 빛을 품는 방식 ]

작성일 : 2026.07.16 18:52 수정일 : 2026.07.16 19:57

작성자 : 김상호 ([email protected])

금이 빛을 품는 방식

                          노노족 김상호

젊은 날의 나는
반듯한 그릇 하나가 되고 싶었다
어느 자리에 놓여도
흠 하나 보이지 않는 사람,
아버지라는 이름 앞에서는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나무이고
남편이라는 자리에서는
비바람 한 점 들이지 않는 지붕이며
친구의 어깨가 기울 때마다
말없이 받쳐주는 벽이고 싶었다

 

그것을
좋은 사람이라 불렀고
그 말의 가장 높은 곳에
내 이름을 올려놓고 싶었다
그러나 삶은
둥근 길로만 오지 않았다
어느 날은
내가 건넨 말 한마디가 칼이 되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에 꽂혔고,
어느 날은
자식의 눈물을 앞에 두고도
아버지라는 이름 뒤에 숨어
옳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내가 깊은 밤
혼자 삼킨 한숨을
나는 너무 늦게 들었고,
오래된 친구가
내 곁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동안에도
먼저 손을 내밀지 못했다.
그때마다
내 안에서 무엇인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한 번 금이 간 마음은
아무리 감추어도
빛 앞에서는 선명했다
나는 금을 숨기기 위해
더 반듯하게 웃었고
더 단단한 사람이 되려 했다
사람들이 내 흠을 볼까 두려워
상처 위에 자존심을 덮고
후회 위에 침묵을 쌓았다


그러나 세월은 이상한 장인이었다
내가 감추려 했던 금을 지우지 않았다
오히려 그 틈마다
늙어가는 부모의 뒷모습을 넣어주고,
떠나간 사람의 이름을 새겨주고,
미처 건네지 못한 사과와
뒤늦게 깨달은 사랑을 가만가만 채워 넣었다


겨울날이었다
찬장 깊숙이 있던
낡은 찻잔 하나를 꺼내다가
나는 오래 바라보았다
잔의 옆구리에
가느다란 금 하나가 지나가고 있었다
버릴까 하다가
따뜻한 물을 부었다
금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금을 따라 햇빛 한 줄기가 머물렀다



빛은
완전한 곳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깨어진 틈을 찾아 들어와
우리가 감추고 싶었던 상처를
가장 따뜻한 무늬로 바꾸어 놓기도 했다
돌아보니 아버지도 완벽하지 않았다
그의 굽은 등이 내 어린 날의 지붕이었다는 것을,
나는 아버지가 떠난 뒤에야 알았다

어머니도 완벽하지 않았다
때로는 서툰 사랑으로 내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그 서툰 두 손이 평생 나를 놓지 않았다는 것도
너무 늦게 알았다


나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내 자식의 기억 속 어디쯤
서운한 아버지로 남아 있을 것이고,
아내의 긴 세월 어느 페이지에는
지워버리고 싶은 남편으로
적혀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누군가의 금을 함부로 들여다보지 않으련다
그 사람이 견뎌온 겨울을
내가 모두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넘어져 있으면
왜 넘어졌느냐 묻기 전에
손부터 내밀고,
누군가 내 마음에 상처를 남기면
그의 가슴에도 나와 닮은 금 하나쯤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완벽한 사람은 없었다
부모도,
자식도,
한 번도 서로를 아프게 하지 않은 부부도 없었다
모두 조금씩 금이 간 채
서로의 식탁에 놓인 그릇이었다
때로는 부딪치고,깨지고
서로의 조각에 베이면서도
떠나지 못하고 다시 마주 앉아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는 것.
어쩌면 사랑은 그런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반듯한 그릇이 되고 싶지 않다
대신 누군가의 눈물을 담을 수 있는
조금 깊은 그릇이고 싶다
내가 살아오며 얻은 금마다
용서의 빛을 들이고,
내가 남긴 상처마다
늦더라도 미안하다는 말을 담으며,
마지막 날
세월이 나를 들어
환한 빛 앞에 놓았을 때
흠 하나 없는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금 사이로
따뜻한 빛이 새어 나오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그제야 알 것 같다.
삶이 우리를 깨뜨린 것은 버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서로의 아픔이 들어올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금이 간 자리마다 한 사람의 생애가 흐르고,
그 틈으로
다른 사람의 눈물을 받아들이는 순간,
비로소 완벽하지 않아서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하나의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