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3)은 셋이 아니다
작성일 : 2026.08.19 04:37 수정일 : 2026.08.19 08:55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고치고 싶은 일들이 종종 생겨난다. 삶의 궤적이나 인간관계에서 느낀 아쉬움일 수도 있고, 때로는 자신이 세상에 남겨놓은 저서나 글귀 한 줄이 마음에 걸릴 때도 있다.
필자 역시 예외는 아니다. 몇 년 전 발간했던 저서 《두 번은 아파봐야 인생이다》를 떠올릴 때마다 문득 알 수 없는 부끄러움과 아쉬움이 밀려오곤 한다. 인생의 시련과 성숙을 '두 번'이라는 숫자에 가두어 표현했던 당시의 서투른 통찰 때문이다.
한 번의 아픔으로는 부족하고, 두 번쯤은 겪어야 비로소 삶의 깊이를 알게 된다는 의미였지만, 돌아보면 그 수치적 규정 자체가 인생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담아내기엔 지나치게 협소했다.
그럼 왜 이제 와서 뜬금없이 지나간 저서의 제목을 들먹이며 고치고 싶다는 자책을 하는 것일까. 최근 일독한 하영삼 교수의 《100개 한자로 읽는 중국 문화》라는 책 때문이다.
책 속에서 저자는 한자 ‘삼(三)’의 의미를 설명하며 "삼(3)은 결코 '셋'이 아니다"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동양 철학과 문화에서 숫자 삼(三)은 단순한 산술적 수치 '3'만을 뜻하지 않는다.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을 뜻하는 '삼재(三才)'처럼 온 만물을 상징하며 만물의 완성과 조화를 뜻하는 수다.
나아가 '삼고초려(三顧草廬)'에서 유비가 제갈량을 찾아간 것이 정확히 세 번이었는가 하면, 본질적으로 그것은 '여러 번'과 '지극한 정성'을 의미한다.
날마다 자신을 돌아본다는 '일일상성(一日三省)'이나,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에서의 '삼' 역시 마찬가지다. 여기서 삼은 셋이라는 한정된 숫자가 아니라, '여럿', '수많은 시도', 그리고 '무궁무진함'을 다채롭게 품어내는 상징이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가슴 한구석이 찌릿해져 왔다. ‘아, 나는 왜 인생의 시련을 고작 두 번으로 제한하려 했을까.’
삶에서 찾아오는 시련과 고통은 두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몇 번이고 넘어지고, 몇 번이고 자신을 되돌아보며, 수많은 사람과의 인연 속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수많은 아픔과 거듭되는 재기가 모여 비로소 하나의 인생이라는 묵직한 궤적을 완성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나에게 다시금 같은 콘셉트의 저서를 엮어낼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무궁무진의 수를 자랑하는 ‘삼(三)’을 모티프로 삼고 싶다. 《세 번은 아파봐야 인생이다》, 혹은 《삼(三)의 깊이로 살아가는 인생》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물론 여기서의 '삼'은 세 번이라는 횟수가 아니다. 무수한 실패 속에서도 끊임없이 다시 일어서는 삶의 인내이자, 수많은 인연 속에서 배움을 얻는 겸손함이며, 만물을 품어 안는 완성의 깊이이기 때문이다.
지나온 오류를 고치고 싶은 이 마음 또한 결국엔 더 깊은 삶을 향해 나아가는 하나의 ‘삼(三)’, 즉 무한한 성장의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걸 보면 역시 인간은 평생을 배워야 하는 존재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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