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1년에 몇 권의 책을 읽는가?

자랑스러운 한글에게 부끄럽다

작성일 : 2026.09.07 06:38 수정일 : 2026.09.07 08:16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과신(過信)이 불독(不讀)을 불렀는가?

한글은 우리에게 읽을 권리를 주었거늘

 

나와 같은 작가는 하나같이 고민이 많다. 어렵게 써낸 책이 과연 독자들에게 읽힐 것인가 하는 걱정이다.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작가는 오랜 시간 생각하고 쓰고 고치기를 반복한다.

 

출판 과정에서 적지 않은 비용과 수고도 감수해야 한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책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저자의 시간과 정성, 때로는 인생의 한 부분을 담은 결과물이다. 그런데 정작 그 책을 읽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면 작가로서는 허탈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한 칼럼에서 10년 전만 해도 성인 열 명 가운데 여섯 명이 1년에 한 권의 책을 읽었지만, 이제는 그 숫자가 고작 세 명 수준으로 줄었다는 내용을 접했다. 숫자만 놓고 보아도 충격적이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나라의 문해율은 ‘정작’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나는 문득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에 실린 ‘한글을 만든 진짜 이유 세 가지’라는 글을 떠올렸다.

 

우리나라 국민의 높은 문해율에는 교육열도 한몫했겠지만, 무엇보다 한글이 배우기 쉬운 문자라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1446년 훈민정음이 반포될 당시 정인지는 『훈민정음해례』의 ‘후서’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하루,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는 문자가 바로 ‘한글’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실제로 오늘날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한글을 읽고 쓰기 시작한다. 이처럼 한글은 세계적으로도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문자로 평가받는다.

 

세종은 정음청이라는 특별기관을 설치하고 당대 최고의 학자들을 참여시켜 오랜 연구 끝에 한글을 완성했다. 한글은 말 그대로 국가적 프로젝트의 산물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훌륭한 문자를 가지고 있으면서 왜 책을 읽지 않는 것일까?

 

 

여기에서 나는 역설을 발견한다. 한글이 너무 쉬워서 오히려 독서를 쉽게 생각하게 된 것은 아닐까? 물론 한글이 쉽다는 사실 자체가 독서 감소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스마트폰과 영상 콘텐츠의 폭발적인 증가, 짧고 자극적인 정보에 익숙해진 생활 방식, 바쁜 일상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과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이다.

 

한글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책 한 권을 끝까지 읽고 그 안에 담긴 생각을 이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문자를 읽는 능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문장을 이해하고, 생각하고, 질문하고, 자신의 삶과 연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글이 우리에게 읽을 수 있는 ‘열쇠’를 주었다면, 독서는 그 열쇠로 세상을 여는 행위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한글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그 가치를 잊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너무 쉽게 배웠기에 너무 쉽게 생각하고, 언제든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작 읽지 않는 것이다 라는 ‘편견’이다. 하지만 한글을 자랑하면서도 책을 멀리한다면 그것은 한글에 대한 진정한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래서 ‘불독(不讀)’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읽지 않는다’는 뜻의 불독은 한글의 실패가 아니라 한글을 사용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한 질문이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은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읽고 쓸 수 있는 문자를 만들었다. 그런데 수백 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그 문자를 손에 쥐고도 책을 읽지 않는다. 따라서 이것이야말로 역설적인 현실이다.

 

한 마디로 자랑스러운 한글에게 부끄럽다.

 

한글이 쉬운 문자인 것은 축복이다. 그러나 그 쉬움을 독서의 게으름으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이제 필요한 것은 한글을 자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글로 무엇을 읽고,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이다.

 

한글은 우리에게 읽을 권리를 주었다. 이제 그 권리를 사용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과신이 불독을 불렀다면, 다시 독서로 그 불독을 깨워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