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부터 당신 자신을 믿어라
작성일 : 2026.09.13 07:59 수정일 : 2026.09.13 08:11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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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험가 마르코폴로의 웅대한 모습을 AI 이미지로 생성 |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이야기를 품고 산다. 누군가는 그것을 가슴속 깊이 묻어둔 채 세상을 떠나고, 또 누군가는 자신의 경험을 글로 남긴다. 두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기록’이라는 작은 실천에 있을 것이다.
경험은 한 사람의 삶을 만들지만, 기록은 그 경험을 다른 사람의 삶으로 옮겨주는 다리가 된다. 그래서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기록이 전설을 만든다.”
탐험가 마르코 폴로의 삶은 이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마르코 폴로는 1254년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아버지와 숙부를 따라 동방으로 긴 여행을 떠났고, 당시 유럽인들에게는 낯설고 신비로운 세계였던 아시아 곳곳을 경험했다.
중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뒤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298년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전쟁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된 그는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의 가장 답답한 공간인 감옥에서 그의 경험은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마르코 폴로는 동료 죄수들에게 자신이 겪었던 동방 여행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를 흥미롭게 들은 작가 루스티첼로 다 피사가 그의 구술을 받아 기록했다.
그 기록은 훗날 책으로 묶여 세상에 알려졌다. 바로 《마르코 폴로의 동방 여행담》이다. 이후 그의 이름은 단순히 한 시대를 살다 간 베네치아인이 아니라, 동양과 서양을 연결한 ‘위대한 여행가’의 대명사로 남았다.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이다. 마르코 폴로가 여행한 사실만으로 오늘날 우리가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이 이야기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경험은 그에게 있었지만 기록은 그것을 후대의 사람들에게 물려주었다. 결국 기록이 한 인간의 경험을 역사로, 역사를 다시 전설로 만든 셈이다.
그렇다면 기록의 힘은 무엇일까. 경험은 휘발된다. 아무리 대단한 일을 겪었더라도 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은 알 수 없다. 말로 전했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에서 희미해진다. 그러나 글로 남겨진 기록은 다르다.
오늘 쓴 글을 내일 다시 읽을 수 있고,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누군가는 그 기록을 읽을 수 있다. 따라서 기록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인간의 가장 강력한 소통 수단 가운데 하나다.
내가 살아온 시간을 훗날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아직 만나지 못한 누군가에게 건네는 삶의 증언이다. 나는 이 사실을 내 삶을 돌아보면서 더욱 절실하게 느낀다. 나 역시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젊은 시절부터 거창한 작가를 꿈꾸며 문학의 길만 걸었던 사람도 아니다. 다양한 일을 하며 먹고살았고, 때로는 험한 일을 하기도 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특별할 것 없는 삶의 궤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 평범한 하루하루가 오히려 글의 재료가 되었다. 사람을 만나면서 느낀 감정, 직장에서 겪은 희로애락, 사회를 바라보며 품었던 생각, 책을 읽다가 얻은 깨달음, 길을 걷다가 문득 떠오른 단상까지 모두 기록의 대상이었다.
특히 경비원으로 일하던 시절에도 나는 글을 놓지 않았다. 삶이 힘들다고 글까지 포기한다면 내 인생의 중요한 장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틈틈이 쓰고 또 썼다. 그렇게 쌓인 글과 생각은 한 권의 책이 되었고, 또 다른 책으로 이어졌다.
《경비원 홍키호테》를 비롯하여 《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 《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 《가요를 보면 인생을 안다》, 《장편소설 평행선》, 《초경서반》, 《두 번은 아파봐야 인생이다》 등 여러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책을 쓰면서 깨달은 것은 의외로 단순했다. 책의 재료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책은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만 쓰는 것도 아니고, 유명한 사람만 출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구에게나 책이 될 만한 삶과 사연이 있다. 다만 그것을 발견하고 기록하느냐, 그냥 흘려보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농부에게는 한 해 농사에도 이야기가 있고, 어머니의 평생 밥상에도 사연이 넘친다. 아버지가 평생 가족을 위해 흘린 땀에도 감동이 있다. 직장인의 애환에도 교훈이 있고, 실패한 사업가의 눈물에도 다른 사람에게는 소중한 지혜가 있다.
어린 시절의 가난도, 첫사랑의 추억도, 자녀를 키우며 겪은 고생도,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하는 만학의 도전도 모두 훌륭한 글의 소재가 된다. 중요한 것은 ‘내 이야기가 과연 책이 될까?’라는 의심을 내려놓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배움의 길을 걷고 있다. 젊은 시절 학업을 충분히 이어가지 못했던 내가 50여 년이라는 긴 시간을 건너 다시 학교에 다니고 있다. 이른바 주경야독의 삶이다. 나이가 들어 다시 공부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고 몸도 따라주지 않을 때가 있다. 어제 외운 영어 단어가 오늘이면 흔적 없이 사라지는 듯한 답답함도 있다. 그렇지만 이 또한 내 삶이다.
힘들다고 해서 버릴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힘들기 때문에 기록할 가치가 있다. 젊은 사람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나에게는 거대한 도전일 수 있고, 그 도전을 극복하는 과정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용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글을 쓰면서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고, 오늘의 나를 살펴보고, 내일의 나를 다독인다. 때로는 세상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때로는 사람 사이의 따뜻한 정을 이야기한다.
내가 겪은 작은 경험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큰 위로가 될 수도 있다는 믿음으로 기록한다.마르코 폴로에게도 처음부터 ‘전설’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그저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자신의 발로 먼 길을 걸었으며,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가 기록했다. 그 결과, 한 인간의 경험은 수백 년을 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 대목에서 나는 기록의 위대함을 다시 생각한다. 경험은 나의 것이지만 기록하는 순간 모두의 것이 된다고.
결국 내가 겪은 실패는 다른 사람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지혜가 될 수 있고, 내가 흘린 눈물은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는 위로가 될 수 있다. 내가 걸었던 길은 뒤따라오는 사람에게 이정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자신의 삶을 하찮게 여기지 말자. 평범한 인생이라고 해서 기록할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상에는 무명인의 이야기가 더 많다.
당신의 삶에는 당신만이 쓸 수 있는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었던 당신의 인생, 누구도 똑같이 경험할 수 없었던 당신의 시간, 당신만이 기억하는 한 장면이 있다. 그것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붙잡아 기록해 보자.
처음부터 멋진 문장일 필요는 없다. 문법이 조금 서툴러도 괜찮다. 한 줄이면 어떻고, 한 문단이면 또 어떤가. 중요한 것은 시작하는 것이다. 오늘의 한 줄이 내일의 한 페이지가 되고, 한 페이지가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그 책을 펼쳐 읽으며 말할지도 모른다. “나처럼 이 사람도 참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구나!” 그 순간 당신의 삶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가 널리 읽히면 역사가 되고, 오래 기억되면 전설이 된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인생은 살아가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기록할 때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된다. 마르코 폴로가 남긴 동방의 이야기가 그랬고, 나 홍경석의 삶도 그러하다. 나는 특별해서 작가가 된 것이 아니다.
살아온 날들을 그냥 버리지 않고 한 줄 한 줄 기록했기 때문에 작가가 되었다. 그러므로 책을 쓰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자. 학력이 부족하다고 주저하지도 말자. 나이가 많다고 포기할 이유도 없다.
당신의 삶 자체가 이미 한 권의 책이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책의 첫 문장을 쓰는 일이다.
기록하자. 오늘을 기록하고, 경험을 기록하고, 마음을 기록하자.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기록은 언젠가 당신이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가장 정직한 증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기록이 당신의 이름을 전설로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당신부터 당신 자신을 믿어라. 작가로서의 첫 출발은 바로 거기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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