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 ‘군 면제’라는 국가 선물 대상자 유감

작성일 : 2026.10.07 05:25 수정일 : 2026.10.07 07:31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누군가 우리를 배반하는 바람에…… 독일군이 우리 빨치산의 은신처를 알아버렸어. 숲과 은신처로 통하는 모든 길이 포위당했지. 우리는 더 깊은 숲으로 숨어들었고, 그곳의 늪지대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어.

 

독일군 추격대도 거기까지는 못 들어왔거든, 늪지대까지는. 높은 기계건 사람이건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게걸스럽게 빨아들였어. 우리는 몇 날 며칠, 몇 주를 머리만 내놓고 목까지 늪에 잠겨 있었어.

 

우리 일행 중에 여자통신병이 있었는데,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참이었지. 아이가 배가 고파서…… 젖 달라고 보채는데…… 엄마도 먹은 게 없으니 젖이 나올 리 없었지. 아이가 울어댔어. 아이는 울지, 독일군 추격대는 코앞에 있지……

 

수색견까지 데리고…… 만약 개들이 아이 울음소리를 듣기라도 하면, 우리는 다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어. 서른 명이나 되는 우리 목숨이 다…… 이해가 돼?”

 

이상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의 P.45~46에 등장하는 충격의 실화 장면이다. 이 책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저서로써 1985년 처음 출간한 이래 20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장르는 전쟁 논픽션으로, 서술 방식이 특이한데 제2차 세계 대전의 독소전쟁에 '소녀병사'로 종군한 러시아측 참전자들의 구술 녹취록을 그대로 글로 옮겼다.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참전자들은 순전히 애국심으로 자원입대한 10대 소녀들이었다.

 

 

그러나 참전자 대부분의 인생은 비참하기 짝이 없다. 전쟁에 휩쓸린 등장인물 대다수의 행적이 일치하는 것도 특징이다.

 

그 행적이란 이오시프 스탈린의 폭정이 이어지던 1941년에 조국이 침략당하자 그간 소련 공산당에게 당한 것은 전부 제쳐두고 조국을 지키기 위해 들끓는 애국심만으로 당 군사위원회를 찾아가 붉은 군대에 자원 입대한 소녀들이 출정한 뒤 전장에서 몸도 마음도 망가진 실화가 독자의 감동은 물론 눈시울까지 자극한다.

 

아울러 전쟁의 비극과 참화를 새삼 되돌아보게 한다. -> 함께 입대했던 전우들은 전부 죽고 혼자만 살아남아 베를린에 입성해 승전을 거뒀지만 전역 이후에는 "남군들과 문란하게 지냈을 것"이라는 세간의 시선 때문에 참전용사임을 밝히지도 못하는 것은 예사였다. ->라는 부분에서는 마치 우리의 흑역사였던 ‘환향녀의 귀환’을 보는 듯했다.

 

최근 종료된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 선수 중 ‘군 면제’라는 국가 선물을 받은 대상자 중 일부가 입방정과 경거망동으로 국민 구설수와 지탄의 대상에 올랐다. 철없는 인터뷰를 시작으로, 예비군 전역모를 쓰고 찍은 사진까지 소셜미디어에 배포되면서 국민적 반감의 정점까지 찍었다.

 

이들에게 반드시 위 책을 일독해보라고 권유한다.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가는 비극이자 악마다. 전쟁이 터지면 가장 먼저 전선으로 투입될 대상이 바로 젊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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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향녀: 표준국어대사전에 ‘화냥년’은 ‘화냥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로, 그리고 ‘화냥’은 ‘서방질을 하는 여자’로 풀이되어 있다. ‘화냥질, 화냥기, 화냥데기’ 등의 단어들로 보아서 ‘화냥년’은 ‘화냥’과 여자를 낮잡아 이를 때 쓰는 말인 ‘년’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화냥년’은 ‘환향녀(還鄕女)’에서 왔다는 설이다. 즉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붙잡혀 갔던 여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그 여인들이 몸을 버린 여자들이어서 그들을 지칭하던 ‘환향녀’가 오늘날의 뜻을 가진 ‘화냥년’이 되었다는 것이다.

 

발음도 비슷하고 민족적 설움도 끼어 있어서 일반인들에게 그럴 듯하게 들렸던지, 오늘날은 이 설을 믿는 사람도 꽤나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설은 어디까지나 민간어원설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