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아이 참 잘 키웠네!

마법의 손 인사

작성일 : 2026.05.30 18:48 수정일 : 2026.05.31 05:38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 명불허전의 오리고기 명가 ‘수통골 장수오리’

 

주말의 수통골은 늘 그렇듯 활기와 번잡함이 공존하는 곳이다. 오랜만에 반가운 지인과 점심 약속이 있어 설레는 마음으로 102번 시내버스에 올랐다.

 

평일이라면 제시간에 도착하고도 남았을 고즈넉한 길이지만, 오늘 같은 주말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국립대전현충원 경내까지 노선이 연장 운행되는 탓에, 참배객과 나들이객의 차량이 뒤엉켜 도로는 이미 거대한 주차장처럼 변해 있었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버스 안에서 사람들의 표정은 조금씩 지쳐갔고, 나 역시 약속 시간에 늦지 않을까 초조한 마음으로 연신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 주말의 102번 시내버스는 국립대전현충원까지 연장 운행하므로 평소보다 운행 시간이 길어진다

 

버스가 붉은색 신호등에 걸려 멈춰 섰을 때였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마침 횡단보도의 보행자 신호가 초록 신호로 바뀌고 있었다. 그곳으로 유치원생쯤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녀와 그의 어머니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총총거리는 발걸음으로 횡단 보도를 건너던 소녀가 문득 고개를 들어 버스 운전석 쪽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놀라운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

 

운전석 높은 곳에 앉아 계신 기사님과 눈이 마주치자, 소녀의 얼굴에 하얀 수국이 피어나듯 생글생글한 미소가 번졌다. 그러고는 작은 손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려 기사님을 향해 격하게 흔드는 게 아닌가.

 

▶ 버스 정류장을 앞두고 가득한 차량으로 인해 거북이 운행하는 102번 시내버스

 

아무런 대가도, 이유도 없는 그 순수한 환대에 멈춰 있던 세상이 일순간 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운전석 바로 옆 좌석에 앉아 이 모든 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하던 나는 기사님의 반응이 궁금해 슬쩍 시선을 돌렸다. 주말 정체로 인해 다소 굳어 있던 기사님의 얼굴에 커다란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즐거운 균열이었다.

 

기사님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며 올라가더니, 이내 세상에서 가장 흐뭇하고 따뜻한 미소를 지으셨다. 그리고는 소녀를 향해 큼지막한 손을 들어 다정하게 화답해 주셨다.

 

▶ 장모님께 드리려고 <수통골 장수오리>에서 구매한 ‘누룽지 오리백숙’의 누룽지

 

두 사람 사이에 오간 아주 짧고 고요한 대화였지만, 그 어떤 화려한 수식어보다 강력한 울림이 있었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던 초조함과 짜증은 눈 녹듯 사라졌다.

 

미소와 다정함은 지독한 독감보다 더 무서운 전염성을 지니고 있는 게 분명했다. 영문도 모른 채 그 광경을 훔쳐본 나 역시 입가에 번지는 웃음을 감출 수 없었으니 말이다.

 

굳이 돈을 들여 사지 않아도, 거창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타인을 이토록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또 있을까. 소녀의 순수한 다정함이 102번 버스 안의 탁한 공기를 단숨에 정화해 버렸다.

 

▶ 입에서 살살 녹는 환상적인 보양식 <수통골 장수오리>의 베스트셀러 ‘누룽지 오리백숙’의 오리고기

 

도로 위의 정체는 여전했고 약속 시간에는 조금 늦을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그렇지만 버스가 다시 출발했을 때 내 마음은 이전보다 훨씬 풍요로워져 있었다.

 

목적지인 수통골에 도착해 지인을 만나면 이 마법 같은 이야기를 가장 먼저 건네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린 소녀가 던진 작은 손 인사 하나가 삭막한 도심의 아스팔트 위를 따스한 꽃밭으로 만들었듯, 내가 만나는 이들에게도 먼저 기분 좋은 미소를 건넬 수 있는 여유를 배우게 된 소중한 주말 오전이었다.

 

▶ 포장된 <수통골 장수오리>의 ‘누룽지 오리백숙’을 들고 시내버스에 올라 처가까지 오는 데 1시간 20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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