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 말고, 듣지 말고, 말하지 말라… 번잡한 세상사 향한 묵언의 일갈

[삶의 지혜를 찾아서] 계룡산 동학사의 ‘삼무보살(三無菩薩)’이 주는 침묵의 가르침

작성일 : 2026.10.01 05:21 수정일 : 2026.10.01 09:22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일상이 번잡할 때, 마음이 어지러울 때 우리는 종종 산사를 찾는다. 속세의 소음을 잠시 내려놓고 고요함 속에서 나를 돌아보기 위함이다.

 

어제, 계룡산 자락에 자리한 천년 고찰 동학사를 올랐을 때도 그랬다. 대웅전을 지나 마주한 세 구의 석불은 그런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흡사 ‘세 마리의 지혜로운 원숭이’를 닮은 이들은, 불교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익살스러우면서도 심오한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다. 바로 ‘삼무보살(三無菩薩)’, 즉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말하지 않는 세 보살이었다.

 

첫 번째 보살은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보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것을 본다. 아름다운 것, 추한 것, 탐나는 것, 분노를 유발하는 것 등 수많은 시각 정보가 여과 없이 뇌로 쏟아져 들어온다.

 

이 보살은 우리가 세속의 욕망과 편견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적인 것들로부터 눈을 감을 때 비로소 진실을 볼 수 있는 내면의 눈이 열린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즉, 외부의 왜곡된 시선에서 벗어나 참된 지혜를 얻기 위한 '비움의 시선'을 요구하는 것이다.

 

두 번째 보살은 귀를 막고 있다. ‘듣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은 온갖 소리로 가득하다. 칭찬과 비난, 루머와 선동, 그리고 남을 험담하는 말들. 이러한 소음들은 우리의 마음을 휘젓고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귀를 막는다는 것은 무관심하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어지럽히는 무익한 말장난과 잡음을 선택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지이다. 소란스러운 세상의 말들을 거부함으로써 내면의 평화를 지키고, 진정으로 귀 기울여야 할 소리를 듣겠다는 성찰의 자세다.

 

 

세 번째 보살은 입을 막고 있다. ‘말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침묵의 무게를 일깨운다. 말은 소통의 도구이지만, 동시에 가장 큰 상처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화살처럼 빠른 말’은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이 보살은 입을 굳게 다묾으로써 성급하고 경솔한 언행을 경계한다.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신중하고 진실하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지혜로운 말만을 하라는 묵언의 수행을 상징한다.

요컨대 삼사일언(三思一言)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가르침을 어떻게 일상에 적용해야 할까? 스마트폰 너머로 쏟아지는 타인의 삶에 대한 무분별한 관음(觀)을 멈추고, 불필요한 비교와 질투에서 벗어나야 한다.

 

근거 없는 억측과 남의 험담을 옮기는 소문에 귀를 닫고, 나의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볍게 내뱉은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항상 인지하고, 진실과 덕을 쌓는 말만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동학사에서 만난 삼무보살은 비록 무언(無言)이었지만, 그 어떤 설법보다 강렬한 울림을 주었다.

 

눈, 귀, 입을 막는 행위는 단순히 외부 세계를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번뇌와 어리석음으로 가득 찬 자아의 문을 닫고 참된 나를 찾아가는 수행의 과정이었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 이 세 보살이 전하는 침묵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침묵 속에 지혜가 있고, 비움 속에 충만함이 있음을. 오늘 하루, 나만의 ‘삼무(三無)’를 실천하며 조금 더 평온하고 지혜로운 삶으로 한 걸음 다가가 보는 것은 어떨까.

 

 
여행·축제·체험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