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밥 노스탤지어
작성일 : 2026.10.10 10:02 수정일 : 2026.10.10 12:47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어제는 대전 장동에 가서 화사하게 피어난 코스모스 축제를 구경한 뒤 인근 식당에서 보리밥을 먹었다. 식탁 위에는 보리밥을 비롯해 된장찌개와 여러 가지 나물, 쌈 채소가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다.
보기만 해도 입맛이 돌았다. 사진으로 남긴 밥상은 소박하면서도 풍성했다. 요즘 사람들에게 보리밥은 건강을 생각하는 웰빙 음식이자 별미로 통한다. 하지만 내게 있어 보리밥은 단순한 음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소환하는 추억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난 1950년대는 6·25전쟁의 참화가 남긴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시절이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가난은 끝나지 않았다.
하루 세 끼를 걱정해야 하는 집이 적지 않았고, 쌀밥은 누구나 마음껏 먹을 수 있는 흔한 음식이 아니었다. 지금은 건강식으로 대접받는 보리밥조차 배불리 먹는 것이 많은 이들의 소망이었다.
또한 그 시절 보리밥은 오늘날처럼 건강을 위해 선택하는 음식이 아니었다.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했던 생존의 밥이었다. 쌀이 귀하니 보리로 배를 채워야 했고, 그마저 넉넉하지 못한 집에서는 밀가루로 만든 수제비가 허기를 달래는 귀한 끼니가 되었다.
나는 후자에 속했다. 보리밥조차 실컷 먹기 어려웠던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으로 서러운 시절이었다.
배가 고프다고 해서 언제든 냉장고 문을 열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고,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주문하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 끼니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할머니가 밀가루 반죽을 얇게 뜯어 넣고 끓인 수제비는 그나마 허기를 달래주는 참 고마운 음식이었다. 지금이야 감자와 호박을 듬뿍 넣고 멸치 육수를 우려낸 수제비가 별미로 사랑받지만, 그때의 수제비에는 풍요로운 식재료보다 생존의 절박함이 먼저 담겨 있었다.
배고픔을 잊기 위해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 먹던 기억은 세월이 흘러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런데 세상은 참으로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가난의 상징처럼 여겼던 보리밥이 이제는 건강식으로 각광받는다. 혈당 관리와 식이섬유 섭취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보리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고, 사람들은 일부러 보리밥 전문 식당을 찾아 나선다.
과거에는 먹을 것이 없어 먹었던 음식을 오늘날에는 건강을 위해 돈을 내고 찾아 먹는 것이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같은 음식인데도 시대가 바뀌니 그 의미와 가치가 완전히 달라졌다.
과거의 가난이 오늘날에는 건강식으로 변신한 셈이다. 물론 보리밥이 반갑다고 해서 그 시절의 가난까지 아름다운 추억으로 포장하고 싶지는 않다. 배고픔은 결코 낭만이 아니었으며, 가난은 의지 하나로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장애물도 아니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어린 시절은 분명 견디기 힘든 현실이었다. 다만 그 시절을 살아냈기에 오늘의 밥상이 얼마나 고마운지 더욱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아무튼 보리밥에 갖가지 나물을 넣고 고추장과 참기름을 더해 쓱쓱 비벼 먹으니 입안에 구수한 풍미가 가득했다. 된장찌개 한 숟가락을 곁들이고 신선한 쌈 채소에 밥을 싸 먹으니 소박한 한 끼가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풍성한 식탁보다 더 큰 즐거움은 이렇게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였다. 코스모스는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제 빛깔을 잃지 않고 피어 있었다. 그 꽃길을 거닐고 돌아와 먹은 보리밥 한 그릇이 내게는 꽃구경 못지않은 여운을 남겼다.
꽃이 계절의 아름다움을 일깨워 주었다면, 보리밥은 지나온 인생의 무게와 오늘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사람은 누구나 과거를 품고 살아간다. 어떤 사람에게는 찬란한 추억이겠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가슴 아픈 기억일 수도 있다. 내게 보리밥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면서 동시에 그 시절을 견뎌온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음식이다.
오늘도 세상에는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므로 풍성한 밥상을 앞에 두고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 시대라고 해서 굶주림의 역사가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리밥 한 그릇에 담긴 것은 단순한 영양과 맛만이 아니다. 가난의 소환이자 기억이며, 인내의 세월이고, 오늘에 대한 감사다. 젊은 세대에게는 건강식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한 시대를 살아낸 증거이자 인생의 교훈이다.
어제 먹은 보리밥은 그래서 더욱 특별했다. 배를 채우는 데서 끝나지 않고 마음까지 채워 주었기 때문이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어느덧 60대 후반에 이른 지금, 나는 새삼 깨닫는다.
밥 한 그릇의 진정한 가치는 가격표가 아니라, 그것을 먹을 수 있기까지 견뎌온 삶의 무게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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