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악성 민원에 교권은 추락하고

검정 고무신과 콩나물시루, 그리고 잃어버린 교실

작성일 : 2026.05.26 05:12 수정일 : 2026.05.26 08:25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내가 어렸을 적 초등학교 교실은 그야말로 콩나물시루였다. 한 반에 예순 명이 넘는 아이들이 삐걱거리는 나무 책상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선을 넘지 말라며 옥신각신하곤 했다.

 

가난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시절이라 대부분 남루한 차림이었고, 발에는 때 절은 검정 고무신이 신겨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양은 도시락을 까먹어도 배는 항상 고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학교 정문만 들어서면 마냥 신이 났다. 그 비좁고 시끄러운 교실은 우리에게 결핍의 공간이 아니라, 꿈이 자라나는 비옥한 영토였기 때문이다. 그때는 참 단순하고도 공정했다.

 

집안 형편이 어떠하든, 부모의 직업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오직 코에 단내가 나도록 공부만 열심히 하면 누구나 1등을 할 수 있었다. 지독한 가난도 교실 안의 열정만큼은 꺾지 못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등대 같은 담임선생님이 계셨다. 선생님께서는 까만 손으로 정성껏 써 내려간 글씨를 보며 상장까지 주셨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너는 크게 될 재목이다.”라는 그 한마디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당연히 ‘더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각오가 가슴속에서 풍선처럼 팽창했음은 물론이다.

 

사자성어 ‘인백기천(人百己千)’의 정신처럼, 남이 백 번 노력할 때 나는 천 번을 노력하겠다는 순수한 투지가 검정 고무신 발끝마다 넘쳐났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콩나물시루 같던 교실은 저출생으로 텅 빈 미니 교실이 되었고, 아이들은 값비싼 브랜드 옷을 입고 메이커 신발을 신는다. 외형은 비교할 수 없이 풍요로워졌지만, 교실 안의 온기는 오히려 차갑게 식어버렸다.

 

오늘날의 학교는 더 이상 공정한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되지 못한다. 부모의 경제력이 아이의 성적과 미래를 결정짓는 서글픈 ‘수저계급론’이 교실을 지배하고 있다. 혼자 열심히 공부해서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는 끝났다고 절망한다.

 

학원으로 뺑뺑이를 도는 아이들의 눈빛에는 배움의 설렘 대신 피로감만 가득하다.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사제간의 정(情)이 메말라 버린 현실이다.

 

과거엔 존경받는 선생님이 인생의 스승이었다면, 지금의 교실은 ‘감정 노동자’로 전락한 교사와 ‘소비자’가 된 학부모 및 학생 간의 계약 관계처럼 변해버렸다.

 

무분별한 악성 민원과 갑질 속에서 교권은 추락했고, 교사는 더 이상 아이들을 마음껏 칭찬하거나 훈육하기를 두려워한다. 상장을 주며 격려하던 온기 어린 손길은 사라지고, 법과 규정의 잣대만 차갑게 뒹구는 교실이 되었다.

 

‘풍요 속의 빈곤’이란 바로 지금의 교육을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배는 고팠지만 꿈으로 배불렀던 검정 고무신 시절, 그리고 배는 부르지만 마음은 늘 굶주려 있는 지금의 아이들...

 

여기서 ‘교사와 교사의 간극’을 새삼 고찰하게 된다. 교사(敎師)는 초등학교(初等學校)ㆍ중학교(中學校)ㆍ고등학교(高等學校) 등지에서, 일정한 자격을 가지고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뜻한다.

 

반면 교사(敎唆)는 ‘남을 꾀거나 부추겨서 나쁜 짓을 하게 함’으로 추락한다. 천양지차(天壤之差)가 발생하는 셈이다. 악성 민원 넣은 학부모 한 명 때문에 전체 학생까지 피해를 입는 현상은 비단 오늘만의 학교 현장이 아니다.

 

이제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1등까지 해봤자 학교에서 과거엔 흔했던 소위 ‘종이떼기 상장’조차 주지 않는다. 일부 학부모의 자기 자식만 감싸고 도는 지독한 이기주의가 다시금 민원(民願)이라는 못된 전가의 보도 칼을 마구 휘두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되찾아야 할 것은 콩나물시루 교실의 낡은 풍경이 아니라,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에 밤새 가슴 설레며 면학의 각오를 다지던 그 순수한 열정과 서로를 보듬던 인간미가 아닐까.

 

씁쓸한 교육 현실 앞에서 문득 내 미래를 눈부시게 빛내주던 옛날의 그 검정 고무신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