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處暑)는 공짜로 오지 않는다

두주불사(斗酒不辭)에서 두주사사(斗酒死辭)로

작성일 : 2026.08.23 07:05 수정일 : 2026.08.23 12:42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내가 젊었을 때는 말술도 마다하지 않았지!” 어르신들의 호기로운 옛 무용담은 흔한 술자리의 단골 메뉴(였)다.

 

술 한 되, 술 한 말을 거침없이 비워내던 무모함. 우리는 그것을 흔히 ‘두주불사(斗酒不辭)’라 부르며 사내다운 호방함이나 애주가의 로망쯤으로 치부해 왔다. 하지만 그 호기롭던 어르신들 다수가 지금은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잔혹한 건강 악화와 싸우고 계신다.

 

‘술에 장사 없다’는 옛말은 결코 과장이 아닌, 삶이 증명한 차가운 진실이다. 나 역시 작년까지만 해도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술을 사랑했던 애주가였다. 좋은 사람들과 잔을 기울이는 취기 속에서 세상을 다 얻은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이 보내오는 경고 신호를 마주한 뒤, 술을 완전히 멀리한 지 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아무리 근사하고 비싼 음식을 앞에 두어도 자연스럽게 술을 매칭(matching)하던 습관은 까마득한 옛일처럼 느껴진다.

 

술을 끊어낸 단호한 결심과 실천은 삶의 주도권을 다시 내 손으로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인류와 술의 인연은 기나길다.

 

기쁨을 나누는 축제의 도구이자 슬픔을 달래주는 위로의 약으로 쓰여왔지만, 그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 술은 치명적인 독으로 변모한다. 술과 사람의 관계는 절제라는 고삐가 풀리는 순간, 상호 존중이 아닌 일방적인 파괴로 치닫는다.

 

애주(愛酒)라는 미명 하에 반복되는 음주는 알코올 의존증이라는 늪으로 이어지며, 뇌의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영혼을 좀먹는다. 알코올 중독은 개인의 정신과 신체를 파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사람이 속한 삶의 터전 전체를 흔들어 놓는다.

 

술로 인한 폐해 중 가장 잔인한 것은 타인과 사랑하는 가족에게 가해지는 2차적 상처다. 상습적인 음주와 음주운전은 단순한 실수가 아닌, 불특정 다수의 생명을 위협하는 명백한 범죄이자 사회적 재앙이다.

 

술기운에 잡은 운전대는 도로 위의 흉기가 되어 누군가의 소중한 일상을 단칼에 앗아가고, 한 가정을 돌이킬 수 없는 절망 속으로 몰아넣는다. 집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대화의 단절, 경제적 파탄 역시 음주라는 괴물이 할퀴고 간 뼈아픈 흔적들이다.

 

두주불사(斗酒不辭)의 호기를 부리며 마시는 술은 때로 목숨을 걸고 마시는 비극으로 결말을 맺는 경우도 왕왕 있다. 술을 사양하지 않던 치기 어린 태도는 결국 죽음조차 사양하지 못하는 절박한 지경으로 스스로를 내몰 뿐이다.

 

술잔을 기울일 때 느끼는 찰나의 즐거움에 비하기엔, 그것이 빼앗아가는 건강과 가족의 행복, 그리고 타인의 생명이 너무나도 숭고하고 크다.

 

금주 1년을 넘어서며 다시금 명확히 깨닫는다. 진짜 장사는 술을 많이 마셔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술이라는 유혹을 끊어내고 자신의 일상을 묵묵히 지켜내는 사람이다.

 

더 이상 잔을 채우지 않아도 맑은 정신으로 마주하는 하루하루가 그 어떤 술자리보다 달콤하다. 비워낸 술잔의 자리에는 건강한 삶에 대한 감사와 소중한 이들과의 진실된 온기가 채워지고 있다.

 

두주불사(斗酒不辭)에서 두주사사(斗酒死辭)로 인식이 바뀌는 순간, 개인의 건강 도모는 물론 음주운전에서의 탈출과 가정 행복의 조건이라는 삼박자의 앙상블(ensemble)이 우리를 찾아온다. 오늘은 또 그 말에 더 어울리는 처서(處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