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훈한 가을을 기대하며
작성일 : 2026.10.06 12:29 수정일 : 2026.10.06 13:37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가을이 완연하다. 아침저녁으로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찬 바람이 불어오고, 길가에는 붉게 물든 단풍잎 사이로 누런 빛깔의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려 눈길을 끈다. 바로 ‘가을의 전령’이라 불리는 모과다.
하지만 모과를 보면 문득 떠오르는 옛 속담이 하나 있다. “과일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 생긴 것은 제법 둥글고 그럴싸한데, 맛이 시고 떫으며 향은 좋지만 모양새가 못생겼다는 비유다.
어릴 적엔 이 속담이 그저 재미있게만 들렸다. 모과의 겉모습을 묘사하는 말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가며, 그리고 모과를 더 깊이 알아가며 이 속담이 얼마나 불합리한 편견인지 깨닫게 되었다.
사람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과일에도 적용해야 함을 절실히 느꼈다.
이런 모과의 처지를 생각하면, 우리말의 ‘까막과부’라는 단어가 떠올라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까막과부’는 혼례식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심지어는 첫날밤도 보내지 못한 채 과부가 된 여인을 일컫는 말이다. 남편 될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평생을 ‘과부’라는 굴레 속에 갇혀 살아야 했던, 얼마나 기가 막히고 억울한 운명이었을까.
당사자의 입장이 되는 상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과일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속담과 ‘까막과부’는 그 억울함의 성격이 닮아있다.
까막과부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시대적 비극과 운명의 장난으로 억울한 굴레를 썼듯이, 모과 또한 인간의 편협한 기준에 의해 ‘망신’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수식어를 얻게 된 것은 아닐까.
모과는 결코 망신살이 뻗칠 과일이 아니다. 오히려 숨겨진 매력과 뛰어난 효능을 가진, 그야말로 알짜배기 과일이다. 모과의 진가는 그윽하고 향기로운 향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모과 하나만 방에 두어도 온 집안이 향긋해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코끝을 자극하는 은은한 모과 향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가을의 정취를 더한다. 뿐만 아니라 모과는 한방에서 약재로 귀하게 쓰일 만큼 다양한 효능을 지니고 있다.
예로부터 기침, 가래, 천식 등 기관지 질환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모과차는 감기 예방의 명약으로 꼽혔다. 이 밖에도 소화를 돕고 관절통을 완화하며, 피로 회복에도 도움을 주는 등 모과는 ‘못생긴’ 외모와는 달리 ‘만능’에 가까운 효능을 자랑한다.
어쩌면 모과의 투박하고 못생긴 겉모습은 세상의 편견과 억울함을 온몸으로 견뎌낸 까막과부의 고단한 삶을 닮았는지도 모른다. 비운의 그녀가 세상의 모진 따가운 시선과 처절한 외로움을 홀로 감내하며 강인하게 살아남았듯이, 모과 역시 그 고운 향기와 뛰어난 효능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과의 겉모습만 보고 ‘과일 망신’이라는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그 속에 담긴 깊은 향과 따뜻한 효능을 헤아릴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까막과부의 억울한 운명에 안타까움을 느끼듯, 편견 속에 갇힌 모과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는 것도 우리들의 따뜻한 시선과 이해일 것이다.
올가을엔 길가에 핀 모과나무를 보며 “과일 망신” 대신 “향기로운 모과”라고 불러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모과의 숨은 가치를 발견하듯, 우리 주변의 사람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모과의 그윽한 향기가 우리 마음속 편견을 녹여내고, 좀 더 훈훈한 가을을 선물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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