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끝난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춘 것

당신도 사연 있多면서요?

작성일 : 2026.09.12 04:27 수정일 : 2026.09.12 09:13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 사람은 누구나 몇 권의 책을 쓸 정도로 많은 사연을 내재하고 있다

 

사람마다 살아온 길이 다르듯 공부를 시작한 이유와 사연 또한 제각각이다. 특히 늦은 나이에 다시 학교에 다니는 만학도들에게는 남들이 쉽게 알 수 없는 굴곡과 애환이 있다.

 

그래서일까. 같은 교실에서 함께 공부하는 급우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저마다 한 편의 영화 같은 인생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만학의 길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나 역시 그렇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다시 책을 펼치고 학교에 다니려니 기억력은 예전 같지 않고 체력 또한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학교에 가는 까닭은 하나다.

 

무엇이든 시작하면 반드시 끝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힘들다고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내며 또 하루를 시작한다.

 

얼마 전, 한 선생님께서 우리 학교 재학생들의 특별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셨다. 우리 학생들은 고령이라는 부담에 더해 원거리 통학, 건강 문제라는 이른바 ‘3중고’를 안고 학업에 임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였다.

 

그중에서도 충남 보령에서 매일 대전까지 통학했다는 분의 이야기는 놀라웠다. 새벽 첫 열차를 타고 대전까지 와서 다시 시내버스로 갈아탄 뒤 학교에 도착했다. 수업이 끝나면 다시 역순으로 이동해 귀가했다.

 

하루의 상당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면서도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숱한 날을 견딘 끝에 지금은 당당한 대학생이 되었다고 한다.

 

경남 진주에서 학교에 다니기 위해 아예 학교 앞 원룸을 얻은 분의 사연도 있었다. 가족과 익숙한 생활 터전을 뒤로하고 오직 공부 하나를 위해 낯선 곳에 방을 구한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라는 말을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현실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끝까지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도 잘 아는 지인이 올해 우리 학교에 입학했다. 충북의 먼 지역에서 대전까지 등하교하는 일정이었다. 처음부터 걱정스러웠다. 하루 등하교에 무려 6시간이나 걸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통학이라기보다 차라리 중노동에 가까웠다.

 

나 역시 “너무 힘들지 않겠느냐!”며 말리고 싶을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그는 야심 차게 시작했던 만학의 길을 중도에 내려놓았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그를 실패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도 그를 여전히 신뢰한다. 사람이 어찌 마음먹은 모든 일을 반드시 이루어낼 수 있겠는가.

 

결심했다고 해서 현실의 모든 장벽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포기가 실패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한 용기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멀리 갔느냐보다 얼마나 진심으로 걸었느냐일 것이다.

 

그는 분명 누구보다 열심히 걸었다. 비록 목적지까지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흘린 땀과 용기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도 사연 있多면서요?”

 

여기서 ‘多’는 단순한 한자가 아니다. 사람마다 사연이 ‘많다’는 뜻을 재미있게 표현한 것이지만, 그 안에는 조금 더 깊은 의미가 있다. 우리는 누구나 남에게 말하지 못한 사연 하나쯤 품고 살아간다.

 

계속 달리는 사람에게도, 잠시 멈춘 사람에게도, 다시 출발하는 사람에게도 각자의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학교에 간다. 그리고 중도에 멈춘 그 친구에게도 여전히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인생은 한 번의 결심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선택과 멈춤,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그는 끝난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춘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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