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은 사람을 늙게 하지 않는다

85세 어르신의 문해력

작성일 : 2026.09.19 15:23 수정일 : 2026.09.19 23:50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9월 15일자 충남도정신문을 펼치다가 한 작품 앞에서 한참 눈길이 머물렀다. 제목부터 정겨웠다. 「더 똑똑해졌어요」.

 

글쓴이는 박순자(85) 어르신이다. 삐뚤빼뚤하지만 한 자 한 자 정성껏 눌러쓴 글씨에서 배움에 대한 간절함과 삶에 대한 당당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사진 속 작품을 글자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 「더 똑똑해졌어요」 - 박순자(85) -

하늘에 계신 영감님 보고 싶어요.

당신 가신 지 벌써 10년이 넘었어요.

당신 없으면 못 살 줄만 알았는데 더 잘 살아요.

정부에서 돈 주고, 문해 학교에서는

영어공부, 핸드폰 문자 쓰는 법, 인터넷뱅킹, 카드 쓰는 법

톡도 배워서 농협에 안 가고, 돈도 보내고

당신 있을 때보다 더 똑똑해졌어요.

수요일·금요일 아침이면 책가방 들고

문해교실 가는 즐거움이 나의 낙입니다.

똑똑하고 인자하신 선생님

좋은 친구들 만나는 문해 학교는

나의 천국인 것 같아요.

내 걱정은 하지 마세요.

당신을 만나면 똑똑해진

나를 보여 줄게요.

 

 

이 글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가슴에 와닿은 것은 ‘문해력’이 단순히 글자를 읽고 쓰는 능력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문해력은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며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힘이다.

 

글을 읽을 줄 알면 세상의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글을 쓸 줄 알면 자신의 마음을 세상에 전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여기에 스마트폰 문자, 인터넷, 모바일뱅킹 같은 디지털 문해력까지 더해졌다.

 

박순자 어르신의 글에는 바로 이 모든 배움의 과정이 담겨 있다.

“영어공부, 핸드폰 문자 쓰는 법, 인터넷뱅킹, 카드 쓰는 법, 톡도 배워서 농협에 안 가고, 돈도 보내고.” 이 대목은 참으로 놀랍다.

 

예전에는 은행에 직접 찾아가야 했던 일을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해결한다.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 인터넷뱅킹을 이용하고, 카드도 사용할 줄 안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니다.

 

첨단 문명의 세상으로 한 걸음 더 가까워진 것이며,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이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뒤의 삶을 바라보는 어르신의 태도다.

 

“당신 없으면 못 살 줄만 알았는데 더 잘 살아요.” 이 한 문장에는 지난 10년의 세월이 들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이겨내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선생님에게 배우며 자신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이다. 그런데 그 중심에 배움이 있었다.

 

“수요일·금요일 아침이면 책가방 들고 문해교실 가는 즐거움이 나의 낙입니다.”

이 문장이야말로 만학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준다. 젊은 학생들에게 학교는 의무일 수 있지만, 어르신에게 학교는 기다려지는 즐거움이다.

 

책가방을 들고 교실로 향하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가는 과정인 셈이다. 무엇보다 “문해 학교는 나의 천국인 것 같아요”라는 표현이 뭉클하다. 85세에 학교가 천국이라니, 이보다 아름다운 배움의 찬사가 또 있을까.

 

나 역시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한 만학도이기에 이 글이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배움에는 정해진 나이가 없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 공부하지 못했다고 해서 평생 공부할 자격까지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늦게 시작한 공부에는 젊은 시절에는 미처 몰랐던 삶의 경험과 절실함이 더해진다.

 

85세 박순자 어르신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에도 큰 박수를 보낸다.

“당신을 만나면 똑똑해진 나를 보여 줄게요.”

 

하늘에 계신 남편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비단 좋은 성적표만은 아닐 것이다. 남편이 떠난 뒤에도 포기하지 않고 배우며 더욱 당당해진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85세에도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학생이 아닐까. 배움은 사람을 늙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배우는 사람의 인생을 다시 젊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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