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는 스마트폰 박사네!”

도둑 공부는 범죄가 아니다

작성일 : 2026.10.09 07:24 수정일 : 2026.10.09 07:29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아내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이면 즐거운 배움의 일탈 삼매경에 빠진다. 모 평생학습관에서 무료로 수강하는 스마트폰과 한문 교육이 그 증좌다. 작년부터 나의 권유로 시작했는데 덕분에 아내는 스마트폰을 나보다 훨씬 더 잘 다룬다.

 

가히 달인 초입의 수준까지 자랑한다. 지난 여름방학 때 초등학생 손녀가 집에 와 며칠 묵었는데 손녀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우리 할머니는 스마트폰 박사네!” 그렇다면 60대 후반의 아내는 어찌하여 이처럼 대단한 할망구가 된 것일까.

 

작년부터 평생학습관에 나가 신통방통한 스마트폰의 신세계를 접신(?)한 아내는 올해도 그 과정을 다시 밟고자 봄에 수강을 신청했다. 하지만 한문 공부 과정은 합격한 반면 스마트폰 과정에서는 모집 수강생 초과로 그만 미역국을 먹었단다.

 

고민하던 아내는 급기야 도강(盜講, 강의를 신청하지 않고 몰래 들음)까지 도모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작년부터 ‘눈이 맞은’ 강사님과는 묵계(默契)로써 함구하기로 했다나. 그렇게 2년 차 학생이 된 아내는 그래서 한문 공부보다 스마트폰 수강하는 날이 더 신난다.

 

아내의 ‘도강’과 달리 나는 작년부터 ‘어엿이’ 야간 중학교에서 만학하고 있다. 17시에 시작하여 밤 열 시에 귀가하는 강행군이라서 힘이 드는 건 당연하다. 그래도 견딜 수 있는 것은 배움의 즐거움 덕분이다.

 

가끔은 ‘이 나이에 무슨 공부?’라며 한탄을 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나 나보다 연상인 급우들(우리 학교 학생 연령은 평균 60~70대가 절반을 넘는다)도 이른바 열공 중이다. 하물며 그에 비하면 젊은 축에 드는 나는 그나마 형편이 낫다는 자위(自慰)로써 오늘도 면학에 힘쓰고 있다.

 

여기서 잠시 노비 출신의 재상 얘기가 떠오른다. 반석평(潘碩枰)은 조선 중종 때의 문신으로 중종 2년(1507)에 문과에 급제한 후 지중추부사를 거쳐 의정부 좌찬성에 이르렀으며, 온건하고 청렴한 관리로 이름이 높았다. 그는 흔히 ‘노비 출신 재상'으로도 일컬어진다.

 

반석평이 어렸을 때 어느 재상(宰相)은 그의 명민함을 아껴 시서(詩書)를 가르쳤는데, 여러 아들과 조카들도 같은 자리에 앉혔다. 덕분에 장성하여 과거에 급제한 반석평은 순조롭게 출세하여 팔도의 관찰사를 역임하며 급기야 벼슬은 정 2품에까지 이르렀다.

 

반면 그가 모셨던 주인집은 재상이 죽은 뒤 재상의 아들과 조카들이 모두 곤궁하여 외출할 때는 나귀도 없이 걸어서 다녔다. 그렇지만 과거의 고마움을 잊지 않은 반석평은 길거리에서 그들을 만날 때마다 늘 가마에서 내려 진흙탕 길에서 절을 하였다.

 

아울러 반석평은 임금께 글을 올려 자신의 원래 신분을 실토하면서 자신의 관직은 삭탈하고 대신 주인집 아들과 조카들에게 벼슬을 내려달라고 청했다. 조정에서는 이를 의롭게 여기고 국법에도 불구하고 반석평을 조정에 그대로 두는 것은 물론 주인집 아들에게도 관직을 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가 실화인지 야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가 남다른 ‘도둑 공부’로 신분의 벽을 뛰어넘은 인물로 우뚝하다는 점에서 호출하였다. 어쨌든 ‘도강’을 거꾸로 하면 ‘강도’가 된다.

 

그런데 강도(強盜)는 폭행이나 협박 따위로 남의 재물을 빼앗는 못된 도둑인 반면, 강도(強度) 높은 학구열로 공부하는 학생은 훗날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까닭에 나는 지금도 ‘도강’으로 공부하는 아내가 대견하다.

 

이에 덧붙여 칠십 나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게 나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