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 같은 우리말의 묘미

“절로 오세요” … 알쏭달쏭 우리말

작성일 : 2026.10.22 05:55 수정일 : 2026.10.22 08:35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 밤을 밝히는 가로등, 그러나 이치를 모르면 암흑으로 바뀐다

 

어제는 공공근로 일자리 사업에서 근로자 안전을 주제로 한 집체교육이 있었다. 이미 공지가 되었던 터였지만 혹시나 싶어 그제는 바로 옆자리 선배님께 이렇게 당부했다.

 

“형님, 내일 아침에는 일루 오시지 말고 절로 오세요.”

 

내가 말한 ‘일루’는 매일 아침 출근하는 일터를 뜻했고, ‘절’은 집체교육이 열리는 장소를 가리킨 것이었다. 그러자 선배님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뒤에서 또 다른 선배님의 조크가 이어졌다.

 

“홍 국장, 뭐? 내일은 절로 오라고? 근데 그 절은 어디야?” 순간 우리는 아침부터 박장대소의 물결에 파묻혔다.

 

물론 내가 말한 ‘절’은 스님이 거주하는 사찰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저쪽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런데 발음만 떼어놓고 보면 ‘절’은 영락없이 불교 사찰을 떠올리게 한다.

 

말 한마디가 이처럼 전혀 다른 풍경을 만들어낼 수 있다니, 새삼 우리말의 묘미가 아닐 수 없다. 생각해 보면 우리말에는 이런 사례가 무척 많다.

 

가령 “배가 아프다”도 마찬가지다. 먹은 음식 때문에 배(腹)가 아픈 것인지, 부동산이나 주식투자로 돈을 왕창 번 이웃이 부럽고 시기심이 나서 그렇다는 것인지 전후 맥락을 모르면 판단하기 어렵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우리말이 단순히 같은 발음의 단어를 많이 가진 데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띄어쓰기나 말의 끊어 읽기에 따라서도 의미가 달라진다.

 

“아버지가 방에 있다”와 “아버지 가방에 있다”를 생각해 보자. 띄어쓰기 하나가 문장을 전혀 다른 장면으로 바꿔놓는다. ‘아버지가 방에 있다’는 평범한 문장이지만, ‘아버지 가방에 있다’가 되는 순간, 청자(聽者)는 황당한 장면을 상상하게 된다.

 

우리말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말하는 사람은 하나의 의미를 전달했는데 듣는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상상력을 동원해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같은 말을 듣고도 사람마다 떠올리는 그림이 다를 수 있다.

 

특히 우리말에는 ‘저절로’, ‘절로’ 같은 표현도 있다. ->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 문장에서 ‘절로’는 ‘저절로’의 준말로,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제 내가 말했던 “절로 오세요”라는 말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의 ‘절’이 등장했다. 장소를 뜻하는 말과 ‘절로’라는 부사(副詞)가 절묘하게 겹치면서 웃음이 만들어진 것이다.

 

말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도구다. 그런데 때로는 그 연결 과정에서 오해가 생기고, 그 오해가 웃음을 낳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단순히 단어의 사전적 의미만 알아서는 부족하다.

 

앞뒤 문맥을 살피고, 말하는 사람의 표정과 상황까지 읽어야 한다. “절로 오세요.” 이 한마디에 사찰을 떠올린 선배님 덕분에 우리는 웃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웃음 속에는 우리말의 깊은 매력이 숨어 있었다.

 

우리말은 때로 수수께끼 같다. 같은 소리인데 뜻이 다르고, 같은 단어인데 문맥에 따라 얼굴이 바뀐다. 그래서 우리말을 제대로 구사하려면 어휘력만큼이나 상황을 읽는 능력과 상상력까지 필요하다.

 

이처럼 우리말은 짧은 한마디에도 여러 개의 문을 달아놓는다. 듣는 사람이 어느 문을 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그래서 우리말은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다.

 

우리말에는 역사와 문화가 있고, 사람들의 삶과 정서가 있으며, 무엇보다 풍부한 상상력이 들어 있다. 우리말은 참 알쏭달쏭하다. 그래서 더 재미있고, 더 아름답다.

 

우리 학교 주변에는 외국인 학생들이 대거 다니는 대학이 두 곳 있다. 우리나라 말을 유창하게 하는 그들을 보면 경이롭고 부럽기까지 하다.

 

반면, 영어와 중국어를 여전히 버벅대며 못 하는 나 자신은 추워지는 계절만큼이나 왜소해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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