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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 0.8명과 ‘종사지경’의 패러독스

입방정조차 좀 떨지 말라!

작성일 : 2026.08.30 10:14 수정일 : 2026.08.30 14:45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 알을 가득 품은 베짱이 모습을 이미지로 생성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출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25만 4,300명으로 전년 대비 1만 6,000명(6.7%) 증가했다. 합계출산율 역시 0.75명에서 0.80명으로 0.05명 상승하며 소폭 반등했다.

 

바닥을 치고 올라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안도의 한숨을 쉴 법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무거운 것은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압도적인 최하위라는 현실 때문이다.

 

숫자상의 미세한 반등에 기뻐하기에는 우리가 직면한 인구 절벽의 골이 여전히 깊고 어둡다. 이 대목에서 조선왕실의 ‘종사지경(螽斯之慶)’이라는 고사성어를 떠올리게 된다.

 

『시경(詩經)』 「국풍」의 ‘주남편 종사’에서 유래한 이 말은 한 번에 수십 개의 알을 낳는 베짱이(종사)처럼 자손을 많이 낳아 왕실의 번영을 이루라는 축복의 표현이었다.

 

과거 왕실에서 새 생명의 탄생을 경사스럽게 맞이했던 것처럼,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태어나는 아이들 역시 그 누구보다 귀하고 우대를 받는 존재다. 아이 한 명을 낳으면 수천만 원의 지원금이 지급되고, 온 사회가 축하를 건네며 국가적 차원의 보살핌이 약속된다.

 

그러나 여기서 지독한 역설, 즉 패러독스가 발생한다. 태어난 아이가 왕실 자손 이상으로 우대받고 축복받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은 왜 선뜻 아이를 품으려 하지 않는가. 베짱이가 알을 가득 품듯 생명의 풍요를 누려야 할 시대에, 왜 출산율은 0.8명이라는 참담한 숫자에 머물러 있는가.

 

문제의 핵심은 단순한 ‘출산 지원금’이나 ‘귀빈 대우’가 아니다. 오늘날의 청년들이 자녀를 낳지 않는 이유는 아이를 우대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아이가 자라날 세상과 아이를 키워내야 할 부모의 삶이 지나치게 고되기 때문이다.

 

아이를 왕자나 공주처럼 극진히 모신들, 부모가 주거 불안과 과도한 사교육비, 일·가정 양립이 불가능한 노동 환경에 시달린다면 다산은 축복이 아닌 짐이 될 뿐이다. 그렇다면 이 패러독스를 깨고 출산율을 보다 가파르게 제고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 민심을 분노로 몰고 간 한심한 폐버스 청년 주택 이미지를 AI로 생성

 

▲ 첫째, ‘양육 비용’의 구조적 절감이 시급하다. 주거와 교육은 청년 세대가 출산을 포기하게 만드는 가장 큰 장벽이다. 신혼부부가 안심하고 거주할 수 있는 장기 공공임대주택의 획기적 확대와 대출 금리 완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공교육의 질을 근본적으로 높여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지 않는 한, 아무리 출산 장려금을 준다 한들 청년들의 주머니 사정은 개선되지 않는다.

 

▲ 둘째, ‘시간의 자유’를 보장하는 노동 문화의 전환이다. 아무리 제도가 잘 갖춰져 있어도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쓸 때 눈치를 봐야 한다면 그림의 떡이다.

 

육아휴직의 의무화, 시차출퇴근제 및 재택근무의 정착, 유연근무제의 확대 등을 통해 아이를 키우면서도 자신의 커리어를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 셋째, 지역 균형 발전과 경쟁 완화다. 수도권 과밀화로 인한 극심한 생존 경쟁은 청년들에게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환경을 조성했다. 지방에서도 충분히 좋은 일자리와 교육 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국토 균형 발전이 이루어질 때, 경쟁의 압박이 줄어들고 비로소 아이를 낳아 키울 여유가 생겨난다.

 

‘종사지경’의 본질은 단순히 알을 많이 낳는 것에 있지 않다. 베짱이가 자유롭게 거닐며 알을 품을 수 있는 풍요로운 들판이 전제되어야 다산의 경사도 가능하다.

 

0.8명이라는 수치는 우리 사회가 청년들에게 생명을 품을 만한 들판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이제는 태어난 아이를 왕족처럼 대우하는 겉치레식 정책을 넘어, 아이를 품고 키우는 부모의 터전을 탄탄하게 다지는 근본적 개혁으로 나아가야 한다.

 

청년들이 미래를 불안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를 꿈꿀 수 있을 때, 비로소 이 땅 위에는 진정한 ‘종사지경’의 기쁨이 다시 찾아올 것이다.

 

어떤 의원의 아니면 말고 식의 ‘버스 하우스 & 폐버스 청년주택’ 구상과 같은 한심한 대책은 제발(!) 입방정조차 좀 떨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