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케키의 슬픔
작성일 : 2025.11.23 16:54 수정일 : 2025.11.23 19:15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지인으로부터 취재 요청이 들어와 충남 금산에 갔다. 모 명문 고등학교의 ‘제00회 졸업 45주년 기념 송년의 밤’ 행사였다. 이윽고 개최 시간이 되자 많은 동문이 찾아와 속속 행사장을 채웠다.
그들은 서로 악수를 하고 인사를 나누면서 근황을 교환했다. 취재에 사진이 빠지면 실정법 위반이자 앙꼬 없는 찐빵인 법. 순간의 포착까지 놓치지 않으려 신경을 곤두세웠다. 행사의 진행 순서까지 일일이 챙기면서 최고의 기사를 남기고자 노력했다.
행사를 마칠 무렵 저녁 식사가 푸짐하게 식탁에 올랐다. 술과 함께 화기애애 음식을 나누는 동문들 면면은 하나같이 여유롭고 자신만만해 보였다. 그건 배움의 결실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순간, 나로서는 ‘구입 못한 승차권’이라는 생각에 다시금 가슴속으로 비애의 비가 흥건하게 쏟아졌다. 예컨대 남들은 정상적인 승차권을 구매하고 ‘학업’이라는 열차에 탑승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가수 최진희는 그녀의 히트곡 <눈물의 승차권>에서 “(전략) 눈물의 젖은 승차권을 말없이 건네주면서 이별이라 생각하니” 추억이 새로워진다고 했다. 당연한 상식이겠지만 수중에 돈이 없으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차를 탈 수 없다.
그렇다고 마냥 두 발로 걸어갈 수조차 없음은 물론이다. 나와 같은 나이 그룹인 모 명문 고교의 졸업 45주년 기념 송년의 밤 참석자들은 모두 최소한 고등학교를 나온, 당시로서는 엘리트 그룹이었다.
내처 여세를 몰아 대학까지 졸업한 이도 부지수였으리라. 반면 나는 초등학교 졸업식장조차 갈 수 없었다. 지독한 빈곤이 원인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고교 졸업만 했어도 소위 ‘펜대를 굴리는’ 직장은 얼마든지 너끈하게 갈 수 있었다.
하물며 대학까지 나왔다면 두말할 나위조차 없었음은 물론이다. 아무튼 나는 중학교 진학조차 물거품이 된 뒤 소년가장으로 전락했다. 여름에는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제과점에서 떼어온 아이스케키를 팔았다.
그렇지만 저녁이 다 되도록 팔지 못한 아이스케키는 다 녹아서 무용지물이었다. 그런 날은 돈을 벌자고 시작한 게 오히려 적자만 보는 셈이었다. 그야말로 아이스케키의 슬픔이었다.
못 배운 게 한이 되어 올해부터 야간 중학교에 다닌다. 이 나이에 언제 고교까지 마치고 대학에 입학할지는 솔직히 장담할 수 없다. 다만 너무도 늦긴 했지만, 배운다는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물론 우리 학교에서는 배움이라는 ‘과제’에 대하여 일체의 승차권, 즉 돈을 받지 않는다. 그러니 이 어찌 감사한 일이 아니겠는가!
금주의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