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뉴스라인- 강형기 시인
작성일 : 2024-06-13 04:49 수정일 : 2024-06-13 09:22 작성자 : 이설영 기자 (ha9014@hanmail.net)

"현대시에 대하여"
강형기 시인의 문학과 詩
창작이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 나는 창작을 하는 사람이다.
건축 설계.디자인도 창작이고 문학 또한 창작이다. 나의 전공 또한 창작이였다. 게임개발자.
문학.문화 예술은 창작을 넘어서 창조의 영역이다. 창조의 의미에는 가치 있는 것을 새로 만들어낸다는 뜻이 있다.
나는 글을 쓴다. 시를 쓰고 동시를 짓고, 경험을 토대로 수필을 적는다. 모두 가치가 있는 것들이고 취미를 넘어서 나의 또 다른 직업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그럼 가치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를 풀어보자면 가치란 인간 행동에 영향을 주는 어떠한 바람직한 것,
또는 인간의 지적·감정적·의지적인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대상이나 그 대상의 성질을 의미한다.
또는 물질적인 의미가 담겨있거나 인간의 기타 다른 욕구를 해소시켜 주는 것들에게도 가치가 있을 수 있다.
이런 가치있는 시 문학을 하고 있고, 가장 함축적이면서 짧은 한 페이지속에 운율.조화.이미지.감성.울림.메세지 등을
모두 담아 독자와 소통하는 대표적인 장르이며 문학의 꽃이라 할 수도 있겠다. 이 모든 것이 일정한 형식을 따랐으나
현대 시 문학에서는 자유시의 빈도가 많이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시가 서점에서도 비주류인 이유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시를 쓰는 시인은 많은데 시를 읽는 독자 역시
시인들뿐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이 시를 보고 이해하지 못하며,
그로 인해 시인이 원하는 느낌을 전달받지 못하는 것이다. 일반 독자가 분명 한글로 된 글을 읽었으나 전혀 무슨 뜻인지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시인들끼리만 주고받는 암호문이나 다를게 없지 않은가. 나 역시 문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스승님이 계셔서 배운적도 없다. 처음 시를 쓴 계기는 우연이었으나, 여러 시집을 보며 그런 시들을 흉내 내려고 했었다.
낯설고 어려운 시어들과 형식들로 겹겹히 포장하려 애썼었다. 그럴수록 내 시를 읽는 사람들은 더더욱 시를 어려워했다.
'원래 시는 어려운 것이지 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 그리고 난 무식해서 이런 시는 볼 줄도 몰라. /
이러니까 시가 재미없어서 사람들이 잘 안 보는 거야.'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았다.
과연 나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시를 쓰는 것일까. 독자가 없는 시는 죽은 시다.
요즘 오프라인 서점을 가면 시 코너에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시인의 책이 예전 시집부터 요즘 출간된 것들까지
아주 여러권 도배 되어있으며, 이름이 생소한 시인의 시집은 단 한권만 나와 있거나 안 보이는 구석에 켜켜이 쌓여있다.
서점의 시 코너 기획 자체가 어떻게 해도 안 팔리다 보니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안 팔리는 시인들의 책은 주로 온라인 판매가 대부분이며 같은 시인들이나 주변 지인들이 사주는 것이 거의 전부일 것이다. 기자나 평론가들이 아무리 시집을 홍보해도 효과가 없다.
사람들의 인식 자체가 시 문학에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 고전 시부터 지금까지의 현대 시 까지도 시인으로 살아가는 나조차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일반 독자들은 오죽하랴.
내가 활동하는 선진문학작가협회는 이러한 틀을 서서히 깨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리고 나를 협회 임원으로 인정해준 이곳에서 앞장서서 이러한 틀을 깨고 수많은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싶다.
4월에 전시를 기획했던 시화전이 이러한 성격이 짙었으며, 대전에서 가장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서 시화전을 열었다.
특히 참여하는 내 시는 누구나 읽고 이해하기 쉽게 두편의 시를 썼다. 다른 시인이 본다면 시가 참 어리다.
갓 시를 쓴 티가 난다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다면 나는 계속 독자들을 위한 시를 쓸 것이다.
물론 계속 시 문학을 배우고 공부할 계획이고 나의 시 또한 점점 어른이 될 것이다.
어른이 된 나의 작품이라 할지라도 독자들의 가슴을 울려주고 공감을 할 수 있는 그런 시를 쓰고 싶다.
모든 시인 모든 평론가들이 혹평을 할지라도 단 한명의 독자라도 좋으니 쉽게 이해하고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서
바라봐줄 수 있는 그런 시를 쓸 것이다. 모든 시인 평론가들이 호평을 해도 독자가 없는 시인은 죽은 시인이다.
모두 혹평을 할지라도 단 한명이라도 라도 독자가 있는 시인은 가장 맑게 숨 쉬며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시를 쓸 수 있는 시인이다.
누군가의 시집이 출간되고 호평 일색의 기사들이 나와도 일반 시민들 눈에는 그들만의 잔치라고 한다. 인정할 필요가 많다.
나는 2017년도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2018년도에 등단을 했지만 아직까지 개인 작품집을 내지 못했다.
그동안 내 시들은 너무 표면적으로 포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포장이 두꺼우면 사람들은 포장만 풀다 지쳐 정작 포장 속 선물을 보지 못한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속살이 뽀얀 시들을 다시 써나가기 시작하는 중이다. 시인은 사람들에게 글로써 자신의 모든 걸 보여주어야 한다. 비평을 두려워하고 다른 시인들의 시와 자기 시를 비교만 하다간 영원히 우물속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시를 잘 쓰고 못 쓰고는 없다.
사람들의 외모가 다르듯 시 역시 시인들의 색깔이 다를 뿐. 울산의 한 시인이 나에게 한 말이 생각난다.
내가 쓸 글이 자신 없어도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더라도 보는 사람들마다 느낌이 다를테고 어떤 이가 보았을 땐 좋아해 주지 않겠느냐고. 대한민국의 시 문학이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길 바라며 오늘 이 글을 마친다.
대한민국 시 문학이 이제는 독자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화적 가치를 입었으면 한다.
글 : 강형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