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4-06-16 06:44 수정일 : 2024-06-16 22:17 작성자 : 계석일 기자 (keapark@hanmail.net)
조조는 삼국지 전편(全編)에서 난세를 건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나는 어린 시절 야비한 꾀를 써서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고 거짓으로 속임수를 써서 자신의 위기를 모면하는 사람을 조조 같은 놈이라는 말을 어른들로부터 들은 바가 있다. 조조는 수하에 많은 모사(謨士 : 꾀를 제공하는 사람)를 거느리고 있었지만, 조조 자신도 고단수의 꾀보였다. 조조는 꾀로 많은 역경을 극복한 난세의 간웅(奸雄)이다. 그가 난세를 건넌 대표적인 사례를 하나 소개해 보면 이런 경우도 있었다.
조조가 한(漢) 나라 승상(총리)으로 자리 잡은 후에도 전국은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패권을 다투는 난세였다. 회남에 원술, 기주에 원소, 강동에 손책, 형주에 유표, 익주에 유장, 한중에 장제, 서주에 여포, 예주에 유비 등 호랑이나 사자 같은 무리들이 으르렁거리고 있어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회남에서 원술(袁術)의 세력이 강성해져 스스로 황제 칭호를 쓰며 우쭐대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들리고 있었다.
하늘에는 태양이 하나이듯이 땅에도 황제가 하나여야 하는데 원술이 스스로 황제라 칭하고 나오니, 많은 영웅들의 미움을 사게 된 것이다. 그런데다 서주의 여포를 치러 군사를 일으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조조는 이 기회에 원술을 없애야겠다고 생각하고 서주의 여포와 예주의 유비, 강동의 손책을 부추겨 동맹을 맺었다. 왜냐하면 그 이전에 조조 혼자서 장수(張繡)를 치다가 창피를 당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단독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하였다.
조조는 항상 여포를 경계했고 강동의 손책도 경계했다. 그래서 서주 바로 옆에 있는 예주에 예 주목(豫州牧 : 요즘 광역시장 정도)으로 유비를 박아놓았다. 이것은 꾀 많은 조조가 유비로 하여금 여포를 견제하라는 암시였다.
강동의 손책이 원소와 사이가 나쁘다는 것을 알고 신속히 손책에게 황제의 명으로 좌장군 벼슬을 내리고 자기편으로 끌어들였으며 여포에게도 큰 벼슬을 내려 마음을 흡족하게 해주었다. 그러니 호랑이 같은 작자들이 입이 헤벌쭉 해져 조조가 하는 말에 고분고분하였다.
17만 동맹군은 원술의 근거지인 수춘성을 탈환하고 도망가는 원술을 추격하다 그만두었다. 더 추격하다가는 또 어떤 적이 무슨 짓을 해올지 모르기 때문에 원술이 재기할 수 없을 만큼 두들겨 패고 근거지까지 빼앗은 걸로 만족해야 했다.
원술군은 20만 명이었지만 조조의 동맹군 17만 명에게 얻어맞고 만신창이가 되어 이후 원술은 스스로 자멸해 버렸다. 처음으로 조조를 비롯한 네 마리의 호랑이가 동맹을 맺어 원술이라는 한 마리의 사자를 상대하여 승리한 전투가 이 수춘성 전투였다.
ㅇ역시 동맹의 힘은 강했다. 지금 우리가 동북아의 한쪽 귀퉁이에서 중ㆍ러ㆍ북ㆍ일본의 견제를 받으면서 이만큼 살고 있는 것은 한미동맹의 덕(德)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있다. 종북 주사파들이 외치는 대로 한미 동맹이 깨져 주한미군이 철수했다고 생각해 보라, 한반도에 어떤 일이 생길 것인가?
6.25 전쟁보다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그 답이 있다. 우크라이나가 다른 동구권 국가들처럼 진즉 NATO(북대서양 조약 기구)에 가입해 있었다면 러시아가 감히 지금처럼 침략을 했을까? 절대 침략을 못했을 것이다.
양식 있는 사람들은 철딱서니 없는 감상적 공산주의 추종자들에게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이대로 방치하면 천추에 한을 남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