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기고

그 선생님의 어두웠던 흑역사

여상 출신의 인생 역전

작성일 : 2026.05.02 06:21 수정일 : 2026.05.02 08:59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 AI 이미지

 

가정 형편이 어려워 여상(女商)에 진학했다.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졸업과 동시에 모 연구단지의 연구소에 입사했다. 그러나 만족감은 결코 오래 가지 않았다.

 

대졸자 정규직 직원과 특히 박사급 인재들은 그녀의 학력을 비교하면서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결정적 한 방’이 터졌다.

 

평소처럼 어떤 박사가 지시한 내용을 준비하여 보고했더니 날벼락이 떨어졌다. “일을 이따위로밖에 못 해?”

 

“죄송합니다만 뭐가 마음에 안 드시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그 박사는 더욱 기고만장했다.

 

“됐어. 어서 나가! 하긴 뭐 여상 주제에 무슨 일을 한답시고...” 그 말은 지진이나 쓰나미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그녀는 밤새 울며 고민하다가 사표를 냈다.

 

이후 머리가 터지도록 공부에 매진했다. 결국 명문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받고 교직자로 변신했다. 이상은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선생님의 어두웠던 흑역사(黑歷史)의 일면이다.

 

예나 지금이나 학력으로 사람을 재단하는 사회 현상은 여전하다. 학벌이나 학력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고 서열화하는 '학벌주의'는 우리 사회의 해묵은 과제이자, 많은 이들에게 심리적·사회적 상처를 남기는 문제다.

 

사람은 지능, 인성, 창의성, 공감 능력, 회복 탄력성 등 수많은 역량을 가진 입체적인 존재다. 그러나 학력이라는 단일한 잣대는 이러한 개별적 특성과 무한한 잠재력을 단순화해 버린다.

 

특정 시기의 시험 성적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인생 전체를 결정짓는 성적표처럼 작용하여 개인의 자존감을 위축시키는 것이다.

 

학력은 때로 개인의 노력보다는 부모의 경제력이나 거주 지역 등 사회경제적 배경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

 

높은 학력이 좋은 직업과 높은 소득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고착되면, 부와 권력이 대물림되는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좋은 학벌을 얻기 위한 무한 경쟁은 천문학적인 사교육 지출로 이어진다.

 

이는 가계 경제에 큰 부담을 줄 뿐만 아니라, 교육의 본질을 '지적 탐구'가 아닌 '상대방을 이기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시킨다. 청소년기 아이들은 배움의 즐거움 대신 등급과 석차에 매몰되어 정서적 불안과 스트레스를 겪게 된다.

 

현장 실무 능력보다 “어느 학교를 나왔는가?”가 우선시될 때 사회적 비효율은 더욱 크게 발생한다. 실제로 능력이 뛰어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학력이란 허들의 문턱에 걸려 기회를 얻지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직무 수행에 필요하지 않음에도 높은 학위를 요구하게 되어, 사회 전체적으로 고학력 실업자가 늘어나는 부작용인 학력 인플레이션 현상도 간과하기 어렵다.

 

늦은 밤까지 불이 환히 켜져 있는 여상을 보고 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