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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남은 건 미안함뿐이었다

아내도 누군가의 귀한 딸이었고, 꿈 많은 소녀였거늘

작성일 : 2026.05.28 06:01 수정일 : 2026.05.28 14:25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세상에는 수만 가지의 언어가 있고, 그보다 더 많은 마음의 표현이 존재한다. 하지만 생의 마지막 문턱에 서서 단 한 사람에게, 그리고 그 대상이 나와 고락을 같이 한 조강지처 아내에게 단 한 마디의 진심을 남겨야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말을 고를 것이다.

 

"여보, 나 만나서 고생 많았소. 참으로 미안하오."

 

이 문장은 단순한 사과가 아니다. 그것은 평생을 곁에서 묵묵히 걸어온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경의이자, 그 세월을 다 갚지 못하고 떠나는 남자의 처절한 고백이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삶은 잔잔한 호수보다는 거친 파도가 치는 바다에 가까웠다. 젊은 시절, 가난은 그림자처럼 우리를 따라다녔고 가장이라는 이름의 무게는 때로 나를 무너뜨리려 했다. 그때마다 아내는 무너지려는 나를 지탱해 준 유일한 기둥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당신의 고운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이고, 화사했던 얼굴에 세월의 골이 깊게 패는 동안 나는 무엇을 했는지 되묻게 된다. 내 맘대로 안 되는 세상을 괜스레 비판하고, 툭하면 술이나 찾았으며 만취도 모자라 인사불성이던 나날이 어디 한두 번 이었던가.

 

정작 돈도 못 벌어다 주면서 쓰잘머리 없는 허풍으로 일관할 때도 아내는 집안의 어두운 구석구석을 자신의 빛으로 채워나갔다.

 

나의 성취는 오롯이 나의 것이라 믿었던 오만한 시절도 있었으나, 이제야 보인다. 나의 모든 글과 이름 석 자 뒤에는 아내의 인내와 눈물이 거름처럼 깔려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남편이나 되어 가지고 아내에게 기껏 “미안하다”라는 말은 사실 쪽팔리는 행위다. 미안하다는 말에 담긴 무게가 그만큼 육중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안하오"라는 말 속에는 차마 다 열거하지 못한 수많은 순간이 담겨 있다.

 

변변한 외식 한 번 제대로 시켜주지 못했던 젊은 날의 무능함에 대한 미안함.

밖에서 얻은 스트레스를 집안의 공기로 전염시켰던 못난 자존심에 대한 미안함.

아내도 누군가의 귀한 딸이었고, 꿈 많은 소녀였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은 무심함에 대한 미안함.

 

무엇보다 가장 미안한 것은, 이제 아이들도 다 결혼시켰고, 토끼보다 귀여운 손자가 셋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황혼을 함께 누릴 준비가 조금은 되었는데 나 먼저 짐을 내려놓으려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구차한 변명을 더 이상 지속하고 싶지는 않다. 결국 방점은 아내를 향한 나의 일편단심 애부가(愛婦歌)이기 때문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그동안 당신이 겪은 그 '고생'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희생 덕분에 우리 아이들은 번듯하게 자라 자신의 몫을 다하는 어른이 되었고, 이제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손주들이 우리의 삶에 새로운 봄꽃을 피워내고 있습니다.

 

당신은 나라는 투박한 원석을 만나 평생을 깎고 다듬어 한 사람의 '작가'로, '아버지'로, 그리고 '인간'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나의 생애 가장 큰 행운은 당신을 만난 것이었고, 나의 생애 가장 큰 업적은 당신과 함께 가정을 일군 것입니다.

 

여보, 내 생의 마지막 페이지에 적힐 마침표는 당신의 이름일 것입니다. 부디 내가 떠난 뒤에 너무 오래 슬퍼하지는 마시오. 당신이 나를 위해 헌신했던 그 시간들을 이제는 오롯이 당신 자신을 위해 쓰길 바랍니다.

 

나를 만나 고생했던 그 기억조차 먼 훗날 '그래도 우리 참 열심히 잘 살았다'라는 웃음 섞인 추억으로 남길 기도합니다. 끝으로 나는 이 말을 거듭 강조코자 합니다. - "여보, 참으로 고생 많았소. 미안하고, 또 미안하오.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하오.“

 

 

어제는 수업 시간에 난데없이 ‘어찌 죽는 것이 잘 죽는 것인가’ 라는 화두로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위 글은 이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