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봉사, 무관의 제왕
작성일 : 2026.05.31 05:32 수정일 : 2026.05.31 07:33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취재 현장을 누비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면, 종종 말과 글을 넘어서는 묵직한 감동의 순간과 마주하곤 한다.
특히 오랜 세월 자원봉사자들의 삶을 추적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해 온 나로서는, 이타적 마인드에 기인하여 ‘콩 한 쪽이라도 나누겠다’는 착한 심성에서 발로한 봉사야말로 만인의 귀감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확신한다.
넉넉하지 않은 처지임에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향해 뻗는 봉사자의 선의(善意)는, 글을 쓰는 기자의 심금까지 울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어제도 평소 왕성한 봉사와 기부로 주변의 칭송이 자자한 한 분을 소개받아 모처에서 만났다. 따뜻한 미담으로 지면을 채울 생각에 설레는 마음도 잠시, 정작 당사자는 인터뷰는 물론 자신의 선행이 뉴스로 보도되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다.
아니, 극구 사양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돈 들어가는 거 아닙니다! 선생님의 아름다운 봉사를 주변에 전파하여, 더 많은 사람이 봉사의 영역으로 유입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취재하려는 것입니다.”
공익적인 가치를 내세우며 간곡히 설득해 보았지만, 그는 단호하게 손사래를 쳤다.
“저보다 훌륭한 분이 지천인데 왜 저 같은 사람을 찍으려 하십니까. 그분들을 취재하시고 저는 제발 빼 주세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단호한 사양 앞에서 나는 결국 꺼냈던 카메라를 도로 배낭 안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 허탈함보다는 깊은 울림이 먼저 찾아왔다.
돌아서는 그의 등 뒤로 “듣던 대로 정말 겸손하시고 훌륭하십니다!”라는 진심 어린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왔다.
△ 공명(功名)의 덫과 음덕(陰德)의 향기
경험은 지혜의 축적이라고 했던가. 오랜 취재의 필터로 봉사자들을 들여다보면, 인터뷰이는 대개 두 가지 부류로 선명하게 갈린다.
첫째는 어제의 경우처럼 진정성 있게 봉사하면서도 정작 자신을 드러내는 인터뷰는 극구 사양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남모르게 덕을 쌓는 ‘음덕(陰德)’의 가치를 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격언처럼, 봉사 그 자체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뿐 그것이 활자나 영상으로 박제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둘째는 봉사는 그럭저럭 혹은 대충 하면서도, 인터뷰나 언론 보도라고 하면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드는 사람이다. 이른바 공명(功名)에 현혹된 이들이다.
공을 세워 자신의 이름을 널리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이 봉사라는 숭고한 행위보다 앞서는 경우다. 이들에게 봉사는 목적이 아니라,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한 화려한 ‘스펙’이자 수단일 뿐이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둘 다 ‘봉사자’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지만, 그 내면의 결은 천양지차(天壤之差)다. 전자에게서는 마치 6년근 인삼처럼 깊고 은은한 인간미의 향기가 나지만, 후자에게서는 당장 눈앞의 이익과 평판만을 좇는 조급함과 위선이 묻어난다.

△ 진정한 귀감은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빛난다
물론 선행을 널리 알리어 사회적인 동참을 이끌어 내는 것도 언론과 기자의 중요한 책무다. 하지만 카메라 렌즈를 피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던 어제 그 봉사자의 수줍은 손사래는, 나에게 ‘진정한 봉사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금 무겁게 질문했다.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눈에 불을 켜는 공명주의자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렇기에 남들이 보지 않는 음지에서 묵묵히 땀 흘리고, 정작 빛이 비추어질 때는 슬그머니 등 뒤로 숨는 이들의 단호한 거부가 더욱 귀하고 아름답게 다가왔다.
취재는 비록 실패했지만, 내 배낭 속 카메라에는 그 어떤 사진보다 선명하고 묵직한 ‘진짜 귀감’의 실루엣이 담겼다. 참된 선의는 요란한 나팔 소리와 함께 오지 않는다.
진정한 봉사는 무관의 제왕이랬던가. 어제 내가 만난 그분의 단호한 인터뷰 사양은 고요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세상의 온도를 1도쯤 슬며시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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