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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당독재 체제는 필연적으로 권력의 사유화를 낳는다

외화 ‘북경의 붉은 물결’을 보고

작성일 : 2026.06.03 16:43 수정일 : 2026.06.03 21:56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잔혹극은 대개 '가장 순결한 이념'의 탈을 쓰고 찾아온다. 1981년 대만 백경서 감독이 연출한 영화 《북경의 붉은 물결》(원제: 황천후토, 皇天后土)은 마오쩌둥 체제 아래 중국을 집어삼켰던 문화대혁명(1966~1976)의 광기를 날 것 그대로 포착해낸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영화는 영국에서 귀국해 과학원 부원장이 된 지식인 심의부와 그를 사랑했으나 정보원이라는 신분과 이념의 굴레에 갇힌 위형의 비극적인 삶을 축으로 전개된다. 영화 속 북경은 낙원이 아닌, 인간성이 파쇄되는 거대한 도살장이다.

 

마오쩌둥의 교시에 따라 홍위병들이 득세하면서 지식인과 기술자들은 순식간에 '반혁명 분자'로 낙인찍힌다. 심의부는 투옥되어 모진 고초를 겪고, 위형은 감금된 채 정신착란을 일으킨다.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광기 어린 홍위병들의 고함과 무자비한 '조리돌림'은 이념이 인간을 어디까지 타락시킬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의 백미는 마오쩌둥이 사망한 후 찾아온 뒤늦은 자유의 물결 속에서, 두 사람의 딸이 다시 거리에 문화대혁명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이는 마지막 장면이다.

 

이는 역사의 비극이 어떻게 순환하는지, 그리고 그 상흔이 얼마나 깊게 대를 이어가는지 묵직한 고발을 던진다. 이 영화가 고발하는 비극의 본질은 마오쩌둥과 중국 공산당이 구축한 '일당 독재'의 구조적 부조리에 있다.

 

일당 독재 체제는 필연적으로 권력의 사유화와 우상화를 낳는다. 마오쩌둥은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 정적들을 제거하기 위해 수천만 명의 청소년을 '홍위병'이라는 사냥개로 길러냈다.

 

광장에 모여 마오의 '마오쩌둥 어록'을 흔들며 눈물 흘리던 젊은이들은 혁명의 전위 부대가 아니라, 독재자의 권력욕에 희생된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공산당 일당 독재가 지닌 가장 추악한 적나라함은 '다양성의 말살'과 '국가적 폭력의 정당화'에 있다. 체제의 오류를 지적하는 지식인의 이성은 '부르주아의 잔재'로 처단되었고, 인간적인 연민과 사랑마저 '혁명 사상'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되었다.

 

독재 권력은 인민에게 끊임없는 상호 감시와 밀고를 강요했고, 평생을 쌓아온 학문적 성과와 문화유산은 하루아침에 불타 없어졌다. 이 야만의 시대에 국가의 시스템은 오직 단 한 사람, 마오쩌둥의 안위와 교시를 집행하기 위해서만 작동했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국토를 황폐화한 이 광풍의 주역들이 권력의 목적을 달성한 후 토사구팽 되었다는 점이다.

 

마오쩌둥은 홍위병들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려 하자 '상산하향(上山下鄕)'이라는 기만적인 명목으로 약 1,700만 명의 청년들을 농촌으로 유배 보내 그들의 청춘과 미래를 짓밟았다. 권력자의 말 한마디에 국가 전체가 춤을 추고, 필요가 없어지면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구조, 이것이 바로 공산당 일당 독재가 감추고 싶어 하는 부조리의 실체다.

 

오늘날 《북경의 붉은 물결》이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울림을 주는 이유는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하며, 하나의 이념만이 정답이라고 강요하는 사회는 언제든 야만의 시대로 회귀할 수 있다는 경고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를 은폐하고 기억을 통제하려는 어떤 권력도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붉은 장막 뒤에 숨겨진 진실을 폭로하려는 '대자보'는 언제고 다시 붙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 붉은 광기의 역사를 목격하며, 민주주의와 인간 존엄의 가치가 얼마나 깨어지기 쉬운 유리와 같은지 끊임없이 되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