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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칼날보다 따뜻한 등불 이야기 전하고픈

뉴스의 양가적(兩價的) 반향

작성일 : 2026.06.16 11:40 수정일 : 2026.06.16 16:39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매일 아침 눈을 떠 스마트폰을 켜는 순간부터 우리는 거대한 정보의 바다에 직면한다. 쏟아지는 헤드라인, 쉼 없이 울리는 알림음, 자극적인 영상들까지.

 

바야흐로 우리는 숨 쉴 틈도 없이 밀려드는 ‘뉴스의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다. 세상의 모든 소식이 실시간으로 안방까지 배달되는 편리한 시대라지만, 과연 이 홍수가 우리에게 풍요로움만을 가져다줄까?

 

안타깝게도 우리가 마주하는 뉴스 속에는 빛과 그림자, 즉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격렬하게 혼재되어 있다.

 

▷ 세상의 극단: 무릉도원과 지옥의 기로

 

만약 세상에 좋은 뉴스만 가득하다면 어떨까? 이웃을 구한 평범한 시민의 영웅담, 고질적인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신약 개발 소식, 기후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인류의 지혜 등 따뜻하고 희망찬 이야기들만 끊임없이 들려온다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분명 유토피아, 즉 ‘무릉도원’과 다름없을 것이다.

 

그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우리의 마음은 위안을 얻고, 내일에 대한 기대를 품으며, 인간성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게 된다. 반면, 오늘날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악하는 것은 대개 어두운 뉴스들이다.

 

참혹한 전쟁과 테러, 잔혹한 범죄, 정치적 반목, 빈부격차의 엄청난 간극, 서민과 빈민의 경제적 파탄 소식은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만약 우리의 눈과 귀가 온통 이러한 부정적인 뉴스들로만 채워진다면, 그곳은 곧 살아있는 ‘지옥’이 될 것이다.

 

끊임없는 불안과 분노, 무기력함이 영혼을 잠식하고, 결국 세상과 타인을 향한 냉소주의만 남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뉴스는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을 무릉도원으로 만들 수도, 순식간에 지옥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는 강력한 '양가적 반향'을 지니고 있다.

 

▷ '기왕이면 다홍치마', 희망을 선택한 이유

 

뉴스가 가진 이 거대한 영향력을 일찍이 터득한 필자는 깊은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의 어둠을 외면하지 않는 것도 언론과 지식인의 역할이겠지만, 그 어둠에 매몰되어 사람들의 마음에 절망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옛 선조들의 이 명쾌한 속담은 필자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같은 값이면 더 좋은 것을 택하겠다는 이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진리는 뉴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어차피 마주해야 할 세상의 이야기라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날카로운 칼날보다는 마음을 보듬어주는 따뜻한 등불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는 결심이었다. 그리하여 필자는 의식적으로 '좋은 뉴스'를 찾아내고, 이를 주로 보도하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선택은 단순히 현실의 부정적인 면을 가리기 위한 눈속임이나 도피가 아니(었)다.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묵묵히 피어나는 한 송이 꽃처럼, 여전히 세상은 살만하고 아름다운 구석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었다.

 

어두운 방안을 밝히는 것은 더 큰 어둠이 아니라 작은 촛불 하나이듯, 좋은 뉴스는 지옥 같은 현실을 견뎌내는 이들에게 다시 살아갈 힘과 용기를 주는 강력한 에너지가 된다.

 

▷ 맑은 물을 흘려보내는 마중물로 피어나길

 

물론 세상의 악과 부조리를 고발하는 비판적 뉴스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과잉되어 대중의 영혼을 황폐하게 만들 때, 누군가는 균형을 잡아야 한다.

 

좋은 뉴스를 주로 보도하는 필자의 행보는, 메마른 사회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고 사람들의 마음에 선한 영향력을 확장해 나가는 숭고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떤 뉴스를 소비하고 생산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의 색깔이 달라진다. 홍수 속에서 탁류(濁流)에 휩쓸리지 않고 청류(淸流)를 길러내어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세상이라는 거대한 그릇을 지옥이 아닌 무릉도원의 빛깔로 채워가는 가장 아름다운 실천이 아닐까 싶다.

 

오늘도 필자가 전하는 좋은 뉴스 한 줄이, 누군가의 고단한 하루를 위로하는 따스한 봄바람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