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행복감의 쇠사슬
작성일 : 2026.06.18 04:09 수정일 : 2026.06.18 21:05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 정하섭은 두 번 세 번 거푸 담배연기를 빨아들였다. 흡연욕구가 굶주림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절실함이라는 것을 그는 비로소 경험하고 있었다. 폐부 깊숙이 빨려들어간 담배연기가 온몸에 퍼지면서 의식이 아른아른해지고 팔다리의 긴장이 풀려나가는 그 아련하고도 아늑한 편안함.
그는 고개를 뒤로 젖혀 머리를 벽에 기대고 눈을 내리감은 채 밤새껏 시달려온 초조와 긴장으로부터 놓여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도 잠시 망각 속에 버려두고 있었다. -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1권 초반부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태백산맥》 첫 대목은 정하섭이 소화의 집으로 가는 길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작중 가장 여복이 많은 캐릭터로 벌교의 최고 미모를 자랑하는 문정님, 송경희, 소화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다.
아무튼 당시 뜨거운 인기에 힘입어 1천 3백만 부 이상이 팔리고 200쇄 이상 인쇄, 470만 세트가 팔리는 등 20세기 후반 최고의 베스트 1위였던 《태백산맥》은 누구든 일독하기를 권한다.
이 작품에도 나오지만 그 강렬한 유혹 때문에 담배는 참 끊기가 어렵다. 이를 역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끊기 힘든 게 아니라, 헤어지기 힘든 것이다. 그렇다면 담배가 이토록 끈질긴 이유는 무엇일까?
주변에서 “올해는 정말 담배를 끊겠다”라며 굳은 결심을 선포하는 이들을 자주 본다. 하지만 그 결심이 석 달을 가고 반년을 넘겨 마침내 ‘완전한 이별’로 이어지는 경우는 손에 꼽힌다.
독하게 마음먹으면 안 될 것이 없다는데, 왜 유독 담배 앞에서만큼은 인간의 의지가 이토록 무력해지는 걸까? 수많은 흡연자가 금연에 실패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들의 의지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담배는 인간의 뇌와 심리, 그리고 일상이라는 가장 견고한 요새 속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 첫 번째 쇠사슬: 뇌를 중독시키는 '니코틴의 마법'
가장 먼저 인정해야 할 사실은 담배가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중독성이 매우 강한 '물질'이라는 점이다. 담배 연기를 한 모금 흡입하는 순간, 니코틴은 단 7초 만에 뇌의 보상회로에 도달한다.
그리고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분출시킨다. 도파민은 인간이 쾌락, 성취감, 안정을 느낄 때 나오는 호르몬이다. 문제는 담배가 주는 이 가짜 행복감이 너무나 빠르고 강렬하다는 점이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할 때 담배 한 대를 피우면 순간적으로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 드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지만 니코틴의 효과는 이내 사라지고, 뇌는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된다.
공급이 끊기면 초조, 불안, 집중력 저하 같은 금단증상이 찾아온다. 결국 금연 초기 흡연자가 겪는 고통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니코틴이라는 강력한 물질에 지배당한 뇌의 생리적 굶주림이다.
△ 두 번째 쇠사슬: 일상의 틈새를 파고든 '습관의 무서움'
물질적 중독보다 더 끊어내기 힘든 것은 바로 ‘행동의 습관화’다. 흡연자들에게 담배는 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소, 특정한 감정과 완벽하게 결합한 일상의 이정표다.
- 아침에 눈을 떠서 마시는 커피 한 잔과 담배 한 모금
- 점심 식사를 마치고 동료들과 나누는 짤막한 흡연 타임
- 글이 막히거나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한숨처럼 내뿜는 연기
이 모든 행위는 오랜 세월 동안 반복되면서 뇌에 깊은 회로를 만들었다. 니코틴 성분은 체내에서 며칠이면 빠져나가지만, 수년 동안 몸에 밴 이 ‘습관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따라서 담배를 끊는다는 것은 단순히 연기를 마시지 않는 것을 넘어, 자신의 해묵은 일상 패턴 전체를 송두리째 바꾸어야 하는 거대한 작업이기에 어려운 것이다.
△ 세 번째 쇠사슬: 마음을 위로하던 '가짜 친구'와의 이별
마지막 이유는 담배에 투영된 심리적 위안이다. 고단한 세상살이 속에서 담배는 언제나 내 곁을 지켜주는 유일한 ‘친구’처럼 느껴지곤 한다.
상사에게 꾸지람을 들었을 때, 외롭고 쓸쓸할 때, 혹은 홀로 조용히 사색에 잠기고 싶을 때, 담배는 묵묵히 연기를 피워 올리며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듯하다.
그래서 금연을 시작하면 흡연자들은 깊은 상실감을 느낀다. 마치 오랜 친구와 절교했거나, 소중한 무언가를 빼앗긴 듯한 헛헛함이 마음을 채우는 것이다.
이 심리적 공허함을 이겨내지 못하면, 결국 “에이, 이 고생을 하느니 차라리 한 대 피우고 스트레스 받지 말자”라며 다시 담배를 손에 쥐게 되는 것이다.
△ 독한 의지보다 따뜻한 이해가 필요한 이유
결국 담배가 끊기 어려운 이유는 신체적 중독, 오랜 습관, 그리고 심리적 의존이라는 세 가지 쇠사슬이 단단히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금연에 실패했다고 해서 자신을 패배자라 자책하거나, 주변 사람을 모질게 비난(비흡연자가 흡연자를)할 필요는 없다.
담배를 끊는다는 것은 한 인간이 자신의 오랜 역사와 격렬하게 싸워 이겨내는 위대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하는 끈기, 그리고 담배가 주던 가짜 위안을 대체할 진짜 건강한 즐거움(운동, 취미, 가족과의 대화 등)을 찾아 나가는 일이다.
담배와의 이별은 혹독하지만, 그 질긴 쇠사슬을 끊어냈을 때 찾아오는 몸과 마음의 자유는 그 어떤 연기보다 맑고 향기로울 것이다.
▶ 여러분의 후원(신협: 132-073-095814)이 펜의 힘을 높입니다.
금주의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