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게 얻어 맞은 값으로 남진쇼를 구경하다
작성일 : 2026.06.18 10:27 수정일 : 2026.06.18 21:05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멀티플렉스 극장이 도심 곳곳을 채우고, 손가락 터치 몇 번이면 전 세계의 대형 공연을 안방에서 즐기는 세상이다. 하지만 내 기억 속 극장은 단순히 영화나 쇼를 보러 가는 공간 그 이상이었다.
십 대 시절, 먹고살기 바빴던 그 시절에는 일 년에 한두 번 극장 문턱을 넘는 것조차 커다란 사치였다. 그 즈음 대한민국 가요계는 남진과 나훈아라는 두 거대한 태양이 양대 산맥을 이루며 군림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평소 열렬히 동경하던 남진 씨의 리사이틀이 천안극장에서 열린다는 벽보가 붙었다. 가슴이 터질 듯 뛰었지만 수중에는 차비 몇 푼조차 없었다.
열망은 깊어만 갔고, 결국 공연 당일 나는 ‘혹시 아는 사람을 만나 요행히 들어갈 수 없을까’ 하는 흑심을 품고 극장 앞으로 향했다. 극장 앞은 인산인해를 이루며 구름 같은 인파가 몰려들고 있었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이내 관객들이 입장하자 문을 지키던 ‘기도 아저씨’는 객석이 꽉 찼다며 매정하게 문을 닫아걸었다.
잠시 후, 극장 벽을 뚫고 요란한 팡파르와 함께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남진 씨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내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요동쳤다.
이대로 돌아설 수는 없었다. 나는 무모하고도 고전적인 방법을 쓰기로 결심했다. 무작정 안으로 전력 질주하는 것이었다. 기도 아저씨가 잠시 자리를 비운 찰나를 포착했다.
‘옳거니, 화장실에 갔구나!’ 기회였다. 나는 세계적인 육상 선수처럼 발걸음에 힘을 바짝 주고 극장 문을 향해 잽싸게 달렸다. 하지만 웬걸, 냅다 밀어젖힌 극장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뿔싸! 미는 문이 아니라 당기는 문이었던 것이다. 당황하여 문을 당기려는 찰나, 매서운 살기를 뿜으며 아저씨가 비호처럼 날아와 내 덜미를 낚아챘다.
“요런 쥐방울만 한 놈이 감히 극장을 몰래 들어와?”
화장실 구석으로 끌려간 나는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신나게’ 얻어맞았다. 잘못했다고 애걸복걸하며 오줌까지 찔끔 지릴 정도로 매서운 구타였다. 다행히 상사로 보이는 이가 나타나 “그만하고 내보내라.”며 만류했다.
그렇지만 그대로 쫓겨나기엔 억울했다. 온몸이 쑤시고 아팠지만, 그냥 가면 억울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악으로 깡으로 아저씨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사정했다.
“아저씨, 여태껏 맞았으니 그 값으로 남진 쇼 조금만 보고 가면 안 될까유?”
황당한 요구에 두 아저씨는 어이가 없었는지 실소를 터뜨렸다.
“푸하하! 알았다, 알았어. 들어가서 끝날 때까지 보고 가라.” 선심 쓰듯 던진 그 한마디에 온몸의 통증이 씻은 듯 사라졌다. 드디어 합법적인(?) 공짜 관람권을 얻어낸 것이다.
극장 안으로 들어서자 엘비스 프레슬리풍의 화려한 의상을 입은 남진 씨가 무대를 뒤흔들며 열창하고 있었다. 매 맞은 값으로 얻어낸 무대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친구들에게 누가 대신 돈을 내줘서 구경했다며 부지런히 자랑을 늘어놓았다. 겉으로는 웃었지만 옷 속 멍 자국이 욱신거렸던, 어떤 ‘웃픈 훈장’이었다.
세월이 흘러 60년대와 70년대를 풍미했던 슈퍼스타 남진 씨는 여전히 멋진 모습으로 무대를 지키고 있다. 지금도 노래방에 가면 그의 히트곡 ‘빈 잔’이나 ‘둥지’를 단골 메뉴로 부르곤 한다.
TV에서 그의 얼굴이 보일 때면, 남진 쇼 한번 보겠다고 철없이 날뛰다 경을 쳤던 그 시절 고향 천안극장의 매콤한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잔잔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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