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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익세력의 준동과 양민 학살,체제와 이념전쟁

작성일 : 2026.06.20 18:28 수정일 : 2026.06.20 22:25

작성자 : 김상호

논설위원 김상호

 

이념전쟁으로 나눠진 대한민국

 

6.25 전쟁때 전라도에서는 정규군과의 전투는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좌익에 의한 민간인 살해는 전국 6만여명중 4만3천여명이 전남에서 있었다
그것도 7월 부터 유엔군의 인천상륙 까지 2달남짓 북한군 점령기간에 벌어진 것이다
지역빨갱이가 우익인사나 지주나 부자나 공무원, 군경을 죽창으로 무참히 살해한 것이다
좌익에 의해 살해된 전국 민간인중 70%가 전남에서 벌어졌다
만약 유엔군의 인천상륙이 조기에 일어나지 않았다면 수십만명이 지역 빨갱이에 의해 살해됐을 것이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왜 6.25 전쟁때 전남은 킬링필드가 되었을까

 

빨치산 사건은 1948년 여수·순천 사건과 한국전쟁 전후로 지리산, 태백산맥 등지에서 활동한 남로당 및 북한군 잔당 무장 유격대와, 이를 진압하는 군경 및 민간인 사이에 벌어진 참혹한 비극을 말한다. 이념 갈등이 얽혀 군경의 토벌과 빨치산의 약탈·학살이 반복되며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낳았다.해방 직후 대구 10.1 사건 및 1948년 여수·순천 사건의 주동자들과 잔당들이 산속으로 도피하여 무장 유격대를 조직한 것이 시초이다.한국전쟁 발발 후 인민군의 남하와 1950년 인천상륙작전으로 퇴로가 차단된 북한군 낙오병과 좌익 세력이 지리산, 덕유산, 회문산 등에 집결하며 대규모 세력을 형성했다.이현상을 총사령관으로 삼아 '남부군'을 조직하고, 후방 교란, 보급로 차단, 관공서 습격 등의 게릴라전을 전개했다.국군과 경찰은 '백야전사령부(사령관 백선엽)' 등을 창설하여 대대적인 토벌을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빨치산 근거지의 자원을 차단하는 '견벽청야' 작전이 동원되었고, 거창 사건 및 산청·함양 사건 등 군경에 의한 무고한 민간인 학살이라는 뼈아픈 부작용도 함께 발생했다.1953년 휴전 이후 총사령관 이현상이 사살되는 등 지휘부가 무너졌고, 토벌대가 해체된 1955년을 지나 1963년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이 생포되며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밤에는 빨치산이, 낮에는 국군이 마을을 장악하는 상황 속에서 이웃과 가족이 서로를 고발하고 죽고 죽이는 참혹한 피해가 발생한 현대사의 대표적인 비극이다.1951년 1월부터 4월까지 전남에서 한국군의 게릴라 대규모 토벌작전으로 사살된 빨치산은 6921명에 달하고 603명이 생포됐다.

6.25 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은 이념 대립과 전선 이동에 따라 전국적으로 발생했으나, 특히 전남(영광·함평 등)과 경북(경산·영덕 등) 지역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 외에도 충청, 강원,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군경, 인민군, 우익·좌익 단체에 의해 대규모 학살이 자행되기도 하였다.특히 전라남도 및 호남권영광·함평·무안 등이 인민군 점령기 및 수복 이후 좌·우익 간의 보복 학살이 가장 치열했던 지역였다. 전남 지역은 전체 민간인 희생자의 약 70% 이상이 집중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거창 사건 (경남)은 국군 11사단이 공비 토벌을 명분으로 거창군 신원면 일대 양민 700여 명을 집단 학살한 사건이고.경상북도 및 영남권경산 코발트광산은 국군과 경찰이 보도연맹원과 형무소 재소자 등을 집단 학살하여 수장한 대표적인 장소다.영덕 및 포항 일대에서는 낙동강 방어선 전투 및 수복 과정에서 인민군의 우익 인사 학살과 국군의 부역자 처형이 번갈아 발생하며 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다.충청남도 및 충청북도 노근리 (충북 영동)는 미군의 폭격과 총격으로 피난민 수백 명이 희생된 대표적인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청주·천안·아산 등은 보도연맹원 학살 및 인민군 부역 혐의 등으로 군경에 의한 대규모 희생이 있었다.강원도 원주 및 횡성지역은 전쟁 발발 초기 국군에 의한 보도연맹원 학살이 처음으로 발생한 지역 중 하나다.필자는 여러 정부 및 진상조사위의 자료를 분석 하면서 섬찍함을 느꼈다.

전라도에서 4만3천여명의 양민학살은 지적한바와 같이 지주나 부자,공무원,군경과 그 가족이 대상이였고,그것도 전국 양민 학살 사건중 유독 전라도에서 많큼은 70%이상이였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일부 세력은 좌익이 좌우했던 해방 정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산주의 영향력이 아직도 기세등등한 것이다. 요즘 나라가 혼란스러운 데에는 그 탓이 크다.”

해방 후 좌익 이념 대립과 위기는 1945년 8월 15일 해방 직후부터 1950년 6·25 전쟁 이전까지 대한민국에서 전개된 좌익 활동과 공산주의 역사에 집중된 갈등으로, 이 과정에서 조선인민공화국이 1945년 9월 여운형이 주도한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기반으로 선포되었으나, 남한의 우익 세력과 미군정에 의해 좌절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시기 좌익 세력은 1948년 5·10 선거를 방해하기 위해 남로당 박헌영의 2.7 투쟁 지령에 따라 무력 충돌을 일으켰으며, 무장 대원들이 군경에 검거되는 등 긴장이 고조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오늘날까지 좌우 이념 대립의 근원으로 언급되며,해방 직후의 좌우 혼란과 자기분열은 오늘날의 정치 분열과 연결되었고 국민통합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좌파는 항상 세력을 모으기 위해 악을 상징하는 희생양을 내세운다. 이승만 대통령에 이어 미 군정을 악마화하려 만들어낸 희생양이 박 대령이다.”

“박 대령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반대한 남로당 무장 세력과 싸우다 암살당했다. 그런데도 좌파에서는 박 대령이 제주 4·3 학살의 주범이라고 매도한다. 하지만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제주 4·3사건은 1948년 5월10일 제헌 총선거가 다가오자 남로당 제주도당이 남한 내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거를 반대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벌인 무장투쟁이다. 이 과정에서 수만 명에 이르는 민간인이 희생됐다. 이 무장투쟁을 주도한 남로당 제주도당 군사부장 김달삼은 1948년 말쯤 북으로 도주했다.

 

국민통합의 국정 방향

 

좌우 이념 대립의 종식은 국민통합과 실용주의 기반의 정치 회복을 통해 가능하다

현재 우리는 진실을 보기보다는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들있다. 이 단순한 사실이 오늘날 세계를 치명적으로 분열시키고 있기때문이다. 특히 한국에서 좌·우의 대립은 이제 의견의 차이가 아니라 정체성 충돌이 되었다. 누군가가 합리적 주장을 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진영의 입에서 나오면 자동으로 배척하게되고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일단, 정치권의 팬덤화와 정보화 사회에 진입한 후, SNS 알고리즘과 미디어 분극화가 결정적 요인이다. 유튜브, 페이스북 등은 사용자가 좋아요'를 누른 정보와 유사한 콘텐츠만 추천하기 때문에 각 진영은 자기 확신의 방 안에 갇히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보수적인 언론과 진보적인 언론 등 매체의 이념 편향이 이용자의 인식을 분리하고 강화 하기도한다. 여기에 정치인들은 이러한 '적대적 정치 구도'를 이용해, 결집 효과를 노리고있다. 상대 진영을 악마화하면 중도층을 잃더라도 개딸같은 핵심 지지층이 더욱 결속되기 때문에 타협하지 않는다. 아무리 합리적 타협이라도 배신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협력의 공간은 협소할 수밖에 없는 이치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양극단의 주장을 완화할 방법은 없을까? 결국 정치, 교육, 언론, 종교 그리고 제도적 조정이 필요하다.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말처럼 "진리를 이해하려면 반대 의견도 들어야 한다"라는 원리를 내면화하기 위해서, '겸손'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언론과 교육이 극단적 이슈 대신에 공동 가치 예컨대 공정, 안전, 지속 가능성을 중심으로 서사를 재구성해야 할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사회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논쟁적인 부분의 정책을 결정할 때는 시민 참여형 '공론화 위원회'를 만들어 그것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좀 생소한 숙의 민주주의를 점진적으로 제도화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미디어 리터러시를 강화할 필요가 있는데, 알고리즘의 편향 구조를 이해한다면 자기 진영의 정보도 비판적으로 탐색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나 시민 교육에서 '정보 다이어트'를 가르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일 수있다.그리고 이미 우리 정치권에서도 많이 논의되었지만, 아직 미흡한 수준에 있는 승자 독식형 선거제를 개선하는 것, 현 제도는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밖에 없으므로 비례 대표제의 확대·강화 등을 통하여 다당제가 정착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오늘날의 이념 대립은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심리적·사회적 정체성의 충돌이기 때문에 이성적 설득만으로는 부족하고, 심리적 겸손과 제도 변화 그리고 미디어 환경의 개혁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특히 심화되고 있는 진영 대립과 정치적 양극화,정치권의 대오각성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지적을 하고 싶다.

프로필 (강원도 麟蹄産,시흥시 거주)

아주대 경영대학원 MBA

특전사 정년퇴임(원사),이라크파병,수원보훈교육연구원 전직교육팀장,국방전직 컨설팅 본부장스카우트 컨설팅사업부이사,가천대외래교수,캘리포니아주립대 한국원 겸임교수 역임

한국문인협회 정회원,대한시문학협회 회장,한국멘토교육협회이사(전문위원)

한국예술인재단 평생회원,새한일보 취재본부 본부장,논설위원/더 뉴스라인 논설위원,

세계전뇌학습 홍보대사.

시니어모델,방송패널,인문학,법정의무교육 강사/독서코칭,문학(시,수필)활동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선양위원.

[상훈]

참모총장,국방부 장관,대통령 경호실장등 장관급/지차체기관장 표창 84회 수상외

국무총리,대통령표창,대한민국보국훈장 광복장,국가유공자등록,가천대학교등 감사패17회,

충효예대상(육군본부).평생교육 명강사 수상(3회),신지식인 선정(군,2000),

자랑스런 아주인 선정(아주대경영대학원동문)

2021 한국을 빛낸 세종문화예술대상.림영창문학상외15회 문학상 수상

2023대한민국을빛낸자랑스런 인물대상(새한일보),

제20회 대한민국평생교육학습대상(국무총리상),세계천사나눔봉사대상 수상(2회)

2025 글로벌 리더혁신대상 문화예술부문 (새한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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