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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위대한 유산

딸의 이름을 부르면 봄바람이 불었다

작성일 : 2026.06.22 04:34 수정일 : 2026.06.22 14:24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그 시절엔 정말이지 눈부신 바람이 불었다. 1980년대 후반, 정확히는 내 품에 소중한 딸아이를 안았던 1987년 무렵의 이야기다.

 

당시 출산을 앞둔 엄마들의 화두는 단연 ‘아이 이름’이었다. 그런데 그 화두의 중심에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거대한 물결이 치고 있었다. 대대로 내려오던 돌림자나 한문 옥편을 뒤적이는 대신, 우리의 아름다운 토박이말을 아이 이름으로 선물하는 ‘한글 이름 신드롬’이 바로 그것이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가히 문화적 혁명에 가까운 추세였다. ‘자(子)’나 ‘숙(淑)’, ‘희(姬)’로 끝나는 일제강점기식 잔재가 남아있던 이름들, 혹은 사주팔자에 부족한 오행을 채우려 억지로 조합한 난해한 한자 이름들 사이에서 한글 이름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딸을 낳으면 ‘아름’, ‘다운’, ‘보람’, ‘슬기’ 같은 이름들이 사방에서 들려왔고, 조금 더 서정적인 이들은 ‘한결’, ‘푸름’, ‘초롱’ 같은 이름을 지어주며 뿌듯해했다. 이름을 한 번 부를 때마다 입안에서 맑은 옹달샘물이 고이는 듯한 청량함이 있었다.

 

나 역시 1987년, 핏덩이 같은, 더욱이 우리 남양홍씨 집안에서는 유일무이 공주님이었던 딸아이를 마주하고 앉아 그 아름다운 신드롬의 한복판에 서서 깊은 고민에 빠졌더랬다.

 

‘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한자라는 격식의 틀에 갇히지 않고, 우리말처럼 맑고 주체적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간절했다. 한글 이름은 단순히 예쁜 단어의 조합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아이가 세상을 향해 내딛는 첫걸음이자, 부모 세대가 전하는 가장 따뜻하고 개성 있는 축복의 언어였다. 문중의 어르신들은 돌림자를 쓰지 않는다며 혀를 차시기도 했지만, 젊은 엄마들의 굳은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우리 집의 경우는 물론 내가 총대를 매고 나섰지만)

 

병원 신생아실 요람마다 붙어 있던 ‘이슬’, ‘하나’, ‘새론’ 같은 이름표들은 그 자체로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 1987년생 한글 신드롬의 주역이었던 딸아이는 어느덧 마흔에 육박하는 세월의 언덕에서 사회의 어엿한 주역으로 살아가고 있다.

 

요즘 아이들의 작명 트렌드는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간혹 외래어풍 이름들 사이에서도, 그 시절 지어진 한글 이름들은 여전히 시들지 않는 들꽃 같은 생명력을 뿜어낸다.

지금도 문득 딸아이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볼 때가 있다.

 

그러면 신생아실의 보드라운 살 냄새와 함께, 한글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고 아이의 미래를 축복하던 1987년 그 아름답던 1월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피어오른다.

 

시대를 풍미했던 그 한글 이름 신드롬은, 어쩌면 우리 세대가 자식들에게 줄 수 있었던 가장 순수하고도 위대한 유산이 아니었을까. 흔해 빠진 한자 문구 뒤에 숨지 않고, 그 자체로 온전한 빛을 발하던 그 시절의 이름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더 아름답게 다가온다.

 

생각만 해도 그리운 보름달로 다가오는 딸은 어느덧 두 딸의 엄마가 되었다. 공주님 왕국의 왕비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