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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가 국조특위 불참으로 더 잃은 것

"내가 화가 난 것은 이제부터 너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작성일 : 2026.06.24 05:26 수정일 : 2026.06.24 05:59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6월 23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심장부여야 할 국회에서 씁쓸하고도 무력한 풍경이 연출되었다.

 

'제9회 지방선거 국민참정권 침해 진상규명 및 선거관리 개혁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열렸으나, 정작 그 무대의 주인공이어야 할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의 핵심 관계자들은 자리를 비웠다.

 

법적 강제성이 없는 임의출석 형태라는 허점을 노려, 중앙선관위원은 물론 전 서울시 선관위원장과 전 송파구 선관위원장 등 책임 있는 인사 대부분이 불참한 것이다.

 

이 광경을 국회방송 생중계로 지켜본 국민들의 마음속에 떠오른 단어는 단연 '오만'과 '불신'이었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부름을 가볍게 무시하는 선관위의 행태는, 그들이 여전히 견고한 성벽 뒤에 숨어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 기관'임을 스스로 과시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선관위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들이 이날 당당하게(?) 결석하며 지켜낸 것은 권위가 아니라, 선관위라는 조직을 지탱하던 마지막 보루인 ‘신뢰’의 침몰이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관리하는 독립 기구다. 그 어떤 기관보다 높은 도덕성과 중립성, 그리고 투명성을 요구받는다.

 

그런데 선관위의 힘은 법 조문에 적힌 권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선관위가 관리하는 선거는 공정하다"라는 국민의 무조건적인 믿음, 즉 '신뢰'라는 무형의 자산에서 나온다.

 

하지만 그동안 선관위는 자녀 특혜 채용 의혹, 선거철이 닥치면 직원들의 집단 휴가 러시 등 각종 구설에 오르며 이미 그 신뢰에 깊은 금이 간 상태였다.

 

이번 제9회 지방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국민참정권 침해 논란 역시, 선관위가 국민 앞에 한 점 의혹 없이 소상히 밝혀야 할 중대한 사안이었다. 국정조사는 선관위 입장에서 억울한 누명을 벗을 기회이자, 실추된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청문(聽聞)의 장이어야 했다.

 

그럼에도 선관위는 '임의출석'이라는 법의 틈새를 찾아 숨어버렸다.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는 식의 안일함이자, 국민의 알 권리를 철저히 기만하는 행위였다. 떳떳하다면 나오지 못할 이유가 없고, 잘못이 있다면 나와서 고개를 숙이는 것이 공직 기강의 기본이다.

 

이번 불참 사태는 선관위가 스스로 '우리는 검증받지 않는 권력'임을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내가 화가 난 것은 네가 나를 속였기 때문이 아니라, 이제부터 너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선관위가 이번 국조특위 불참으로 더 잃은 것은, 앞으로 선관위가 내놓을 그 어떤 해명과 선거 결과도 국민들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게 만드는 '만성적 불신'의 씨앗을 뿌린 것이다.

 

신뢰는 쌓기는 대단히 어려우나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국민의 참정권을 수호해야 할 기관이 도리어 참정권 침해 의혹의 중심에 서고, 이를 규명하려는 국회마저 우습게 아는 오만한 태도를 버리지 않는다면, 선관위의 존재 가치는 사라진다.

 

선관위는 알아야 한다. 지금 그들이 지키고 있는 것은 조직의 안위가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철저히 고립되어 가는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의 잔해일 뿐이라는 것을.

 

지금이라도 선관위는 오만을 버리고 국민 앞에 나와 진실을 고백해야 한다. 그것이 파산 직전에 이른 '신뢰 계좌'를 아주 조금이라도 그나마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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