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간절한 소원
작성일 : 2026.06.26 06:41 수정일 : 2026.06.26 06:59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무병장수(無病長壽)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인류가 갈망해 온 최고의 로망이다. 과학과 의학의 발전은 인간의 수명을 비약적으로 늘려놓았고, 이제 우리는 ‘백세 시대’라는 말을 흔하게 듣고 산다.
하지만 과연 오래 사는 것만이 온전한 축복일까? 어제 참석했던 어느 중요한 행사장에서 마주한 한 어르신의 고백은, 그동안 우리가 맹목적으로 좇던 장수의 이면에 숨겨진 시린 그림자를 똑똑히 보여주었다.
행사가 끝날 무렵, 그 행사를 주관한 단체의 수장과 잠시 깊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올해 연세가 93세이신 어르신은 3년 전 평생을 함께해 온 아내를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지금은 적막한 집에서 홀로 독수공방하고 계신다고 했다.
인사를 건네는 내게 어르신께서는 묻지도 않은 속내를 작심한 듯 털어놓으셨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보면 백 세 이상 건강하게 장수하라고 덕담을 건넵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참 많이 불편하고 두렵습니다. 지금 내 유일한 소원은 그저 오늘 밤 자다가 편안하게 눈을 감는 것입니다. 어서 빨리 내 아내를 다시 만나고 싶어요.”
담담하지만 간절함이 배어 있는 그 고백을 마주하는 순간, 가슴 한구석이 몹시 저려왔다. 사람의 생로병사는 나약한 인간이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오죽하면 ‘명줄은 하늘이 점지해 주는 것’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그러나 어르신의 고백은 ‘오래 사는 괴로움’, 즉 장수의 패러독스(Paradox)를 새삼 뼈저리게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 고독과 통증 속의 장수는 축복인가, 형벌인가
아무리 백 세를 넘어 천수를 누린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사랑하는 동반자를 잃은 지독한 외로움과, 하루가 멀다고 찾아오는 육신의 고통이 일상을 지배한다면 그것은 정녕 축복이 아니라 형벌에 다름 없을 것이다.
허구한 날 아프고 쑤시는 육체적 고통과, 혼자 남겨졌다는 영혼의 고독이 무시로 찾아와 괴롭히는 삶은 살아있는 지옥과도 같을 터다.
어르신의 진심 어린 토로는 어느덧 70 고개의 가파른 언덕을 마주하고 있는 나에게도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 고백이 던진 질문의 무게는 자못 육중하게 내 어깨와 가슴을 짓눌렀다.
‘나는 과연 어떤 노년을 맞이하고 있으며, 어떻게 삶을 마무리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고뇌가 밀려왔다.
△ 마리아나 해구보다 깊은 미안함, 그리고 나의 바람
자연스레 곁에 있는 아내의 얼굴이 겹쳐졌다. 아내를 만나 인연을 맺고 살아온 지도 어언 50년이라는 세월에 육박한다. 돌아보면 아내에게 남부럽지 않은 호강은커녕, 모진 세월 동안 고생만 잔뜩 시킨 기억들이 먼저 스쳐 간다.
철없던 시절의 과오와 부족함 때문에 지금도 아내를 향한 나의 미안함과 죄책감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 깊이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로 알려진 마리아나 해구의 챌린저 해연보다도 더 깊고 어두울 것이다.
그래서 나 역시 오래전부터 마음속 깊이 품어온 간절한 바람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아내보다 최소한 몇 년만이라도 먼저 세상과 이별하는 것이다. 홀로 남겨진 이의 슬픔과 적막함이 얼마나 잔인한지 어제 그 93세 어르신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절감했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떠나 아내를 기다리는 것, 그리하여 어제 만난 어르신처럼 홀로 남아 “어서 빨리 아내를 만나고 싶다”며 눈물짓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미안한 아내에게 내가 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이자, 70 고개에 선 내가 바라는 서글프고도 간절한 내 ‘인생의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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