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과 비극, 그리고 책을 읽는다는 것
작성일 : 2026.06.28 04:06 수정일 : 2026.06.28 06:32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멸종(滅種)'이라는 두 글자는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을 스산하게 만든다. 지구상에서 어떤 존재가 영원히 사라져 다시는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거대한 상실이자 절망이다.
그런데 이 무시무시한 단어를 오늘날의 '독서 인구'에 대입해 보면 어떨까. 그것은 단순한 스산함을 넘어, 우리 문화와 정신의 종말을 예고하는 차라리 하나의 비극으로 다가온다. 책을 읽는 이들이 사라지는 사회는 곧 사유(思惟)가 멸종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 인파가 구름처럼 쇄도하고 있다는 소식은 가뭄 끝의 단비처럼 반갑다.
활자를 멀리하고 영상에만 눈을 돌리는 시대라지만, 여전히 책의 향기를 맡고 그 가치를 찾아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이 이토록 많다는 사실은 깊은 안도감을 준다. 아니, 안도를 넘어 현직 작가의 한 사람으로서 머리 숙여 고마운 마음까지 든다.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이 존재하는 한, 우리의 정신적 영토는 결코 황폐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보기 때문이다.
책을 단 한 권이라도 세상에 내놓아 본 저자라면 누구나 절감하는 진실이 있다. 책은 결코 서재의 한구석을 장식하거나, 전시장의 보기 좋은 소품으로 쓰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하얀 백지 위에 밤새워 고뇌하고, 뼈를 깎는 심혈을 기울여 문장을 벼려낸 작품이다.
그렇기에 내가 온 영혼을 갈아 넣은 이 분신 같은 책이 단 한 권이라도 더 많은 이들의 손에 쥐어지기를, 그리하여 누군가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기를 바라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작가들의 공통된 소망이자 간절한 희망이다.
작가에게 독자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 주는 유일한 거울이다. 아무리 훌륭한 사상과 아름다운 이야기도 읽어주는 이가 없다면 한낱 종이 뭉치에 불과하다. 독자가 책장을 넘길 때 비로소 책은 생명을 얻고, 작가의 생각은 독자의 삶 속에서 새로운 꽃을 피운다.
따라서 도서전에 몰려든 수많은 발걸음은 단순히 책을 사기 위한 행위를 넘어, 멸종 위기에 처한 독서 문화를 지켜내고 작가들의 창작 열정에 불을 지피는 거대한 응원의 물결과도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넘쳐나는 인스턴트식 정보 속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점차 고독하고 특별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긴 호흡으로 활자를 따라가며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독서는 그 어떤 첨단 기술도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다.
'독서 인구의 멸종'이라는 비극적인 시나리오를 막아서는 힘은 결국 오늘도 서점과 도서관 등지에서 책장을 펼치는 한 사람의 손길에서 시작된다.
도서전을 가득 메운 그 뜨거운 열기가 일회성 축제로 끝나지 않고, 우리 사회 곳곳으로 스며들어 날마다 책 읽는 소리가 풍성해지기를 소망한다. 작가의 진심이 독자의 눈빛과 만나는 그 순간, 비극은 사라지고 새로운 문화의 부활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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