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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잔(phajaan) — 영혼을 파괴당한 코끼리와 현대인의 자화상

작성일 : 2026.06.29 19:10 수정일 : 2026.06.29 19:15

작성자 : 김용복 주필 ([email protected])

한대희 칼럼니스트

 

파잔(phajaan) — 영혼을 파괴당한 코끼리와 현대인의 자화상

 

파잔(phajaan)이라는 의식이 있다. 야생에서 포획한 아기 코끼리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묶어둔 채 며칠을 굶기고 구타하여 저항 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리는 조련 의식이다. 절반의 코끼리는 이 고통을 버티지 못하고 죽음에 이른다. 살아남은 코끼리는 관광객을 등에 태우고 인간의 돈벌이 수단이 된다. 아기 코끼리는 어미를 찾을 겨를도 없이, 어미의 온기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되기 전에, 이미 인간의 손에 의해 영혼이 산산이 부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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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가 사유하는 존재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배고픔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몽둥이의 공포에서 살아남고자 인간에게 순응했을 그 본능의 심연 어딘가에서, 어렴풋하게나마 냉혹한 세계를 감지하지 않았을까. 영혼이 꺾이는 순간을 스스로 느끼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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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잔혹한 의식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불편하게도 인간 사회의 어떤 단면이 겹쳐 보인다.

물론 우리 삶에 파잔이라는 극단적 폭력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 혹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스스로 자신의 영혼을 조금씩 갉아먹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분명 존재한다. 권력자의 눈치를 살피며 머리를 조아리고, 기득권의 그늘에 기대어 스스로의 목소리를 지워가는 삶. 묶여 있지 않아도, 맞지 않아도, 스스로 아기 코끼리가 되어가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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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말했다. 삶은 배고픔의 연속이라고. 그 배고픔을 스스로 극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가 건네주기를 무기력하게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볼 때 안타까움을 넘어 때로는 분노가 밀려오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세상은 결국 각자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며 살아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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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질문을 멈추면 안 된다는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달려가는 일상 속에서도 스스로에게 묻는 일을 멈추는 순간, 우리는 파잔을 당한 코끼리와 다르지 않게 된다. 사람들은 어쩌면 서로에게 몽둥이를 든 자가 되는 동시에, 맞는 코끼리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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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어려워지고 경쟁은 날로 심화되고 있다. 거기에 더해 인간과 AI의 관계는 이제 단순한 경쟁을 넘어, 인간이 AI에 의존하는 시대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기계에 익숙해지는 것과 기계에 끌려다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인간이 기계를 이끌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도구를 다루는 능력을 스스로 길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파잔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사람이 아닌 시스템에 의해 영혼이 길들여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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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상사의 눈치를 살피는 데 에너지를 쏟기보다, 상사가 먼저 찾을 만큼 자신의 전문성을 키우는 것이 진짜 생존 전략이다. 수동적으로 지시를 기다리는 자세보다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전달하고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인간이 되는 것, 그것이 가장 인간다운 삶의 방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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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텔레비전에서 유행하는 '자연인' 프로그램이 있다. 현대사회에 지쳐 산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자신만의 낙원을 일군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삶을 보면서 지친 영혼에게 안식이 필요하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든다. 그것은 치유인가?, 도피인가.?

물론 개인의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현실을 피해 자연으로 들어간다면, 이 사회는 지탱될 수 없다. 상처받은 영혼에게 휴식은 필요하지만, 쉼 이후에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피하는 것이 아니라 부딪히는 것, 싸우는 것이 아니라 능력으로 상대를 설득하고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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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코끼리는 선택권이 없었다. 우리에게는 있다.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찾고, 스스로의 영혼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파잔 당한 코끼리와 우리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차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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