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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야생마를 건드려?

지난날 내 청춘의 객기와 분노 실화

작성일 : 2026.06.30 14:27 수정일 : 2026.06.30 15:18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 젊어서 펄펄 날았던 내 모습의 AI 가공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문명이 눈부시게 발전했다 한들, 인간 사회의 가장 어두운 단면인 ‘갑질’의 본질은 놀랍도록 변하지 않는다. 최근 대중의 공분을 산 한 프랜차이즈 카페 점주의 행태는 현대판 갑질이 얼마나 교묘하고 악랄해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음료 몇 잔을 무단으로 마셨다는 억지 트집을 잡아, 교사가 꿈인 어린 재수생 아르바이트생에게 “전과자가 되면 대학도 못 간다”라며 550만 원이라는 거액의 합의금을 뜯어낸 사건이다.

 

상대의 가장 취약한 고리인 ‘미래와 꿈’을 인질 삼아 공포를 심어주고 돈을 갈취한 이 행위는 명백한 범죄이자 비열한 폭력이었다.

 

이 사건을 보며 가슴 한구석이 뜨겁게 끓어오르는 이유는, 이것이 비단 오늘날만의 비극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십 년 전, 10대 말의 나이에 당장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 위해 거친 공사장 바닥을 굴러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보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피땀 흘려 일했음에도 돌아온 것은 임금 체불이라는 배신이었다.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해 피가 마르는데, 정작 나한테 돈을 줘야 할 악질 공사장 감독은 식당에서 고기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순간, 눈이 홱~ 돌아갔다! 식당으로 쳐들어가서 다짜고짜 밀린 임금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는 적반하장으로 욕을 하는 게 아닌가!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그의 멱살을 끌고 식당 밖으로 나왔다.

 

그를 내팽개친 뒤 주먹으로 무력 시위를 벌였다.(당시 나는 복싱을 배운 야생마여서 두려울 게 없었다!) 그러자 위기감을 느꼈던지 그는 주머니에서 서둘러 돈을 꺼냈다. 이는 내가 직접 경험한 팩트다. 내가 저술한 책에도 나온다.

 

그 적반하장의 태도 앞에서 느꼈던 분노는 시대는 달라도 카페 점주의 협박 앞에 절망했을 어린 아르바이트생의 눈물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과거의 노동자가 참을 수 없는 모멸감과 생존의 위기 속에서 감독의 멱살을 잡고 주먹으로 무력 시위를 벌여 스스로의 권리를 쟁취해 냈다면, 오늘날의 사회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이 악순환에 제동을 걸고 있다.

 

과거의 저항이 생존을 위한 처절한 물리적 투쟁이었다면, 현대의 저항은 '가맹 계약 해지'라는 자본주의적 철퇴와 대중의 매서운 사회적 지탄으로 나타난다.

 

본사의 발 빠른 계약 해지 처분은 단순히 한 매장의 문을 닫게 한 것을 넘어, 청년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협박하는 악덕 업주들에게는 강력한 본보기가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힘없는 이들의 피땀을 쥐어짜 자신의 배를 불리려는 자들은 존재한다. 그러나 과거의 뜨거웠던 사적 저항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는 시스템을 통한 공적 단죄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멱살을 잡고서라도 권리를 찾고자 했던 내 청춘의 객기와 분노는, 오늘날 부당한 갑질에 맞서 연대하고 분노하는 사회적 정의감의 뿌리와 같다.

 

아르바이트생을 상대로 한 악덕 업주들의 갑질은 단순한 노사 간의 갈등이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반사회적 범죄다.

 

그렇기에 이들에게는 더 엄격하고 가혹한 본보기가 필요하다. 수십 년 전 공사장의 매서운 주먹이 가졌던 경고의 메시지는, 오늘날 법과 제도의 단호한 처벌로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더는 꿈을 인질로 잡혀 눈물 흘리는 청년들이 없는, 조금 더 상식적이고 공정한 세상이 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