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떳떳하다면 ‘5·18 유공자 명단’ 공개부터 실천하라

성역과 카오스, 소도(蘇塗)의 역설이 던지는 경고

작성일 : 2026.07.05 08:56 수정일 : 2026.07.05 17:59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 꼭꼭 숨기고 있는 ‘5·18 유공자 명단’ 이미지 AI 합성

 

고대 삼한 사회에는 '소도(蘇塗)'라는 독특한 성역(聖域)이 존재했다.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방울과 북을 단 큰 나무를 세웠던 그곳은 제사장인 천군이 다스리는 신성한 공간이었다.

 

소도의 신성함이 지닌 가장 강력한 상징은 역설적이게도 ‘치외법권’에 있었다. 세속의 법을 어긴 죄인이 이곳으로 도망쳐 숨더라도, 권력은 그를 함부로 잡아가지 못했다.

 

신을 향한 외경심이 세속의 통치권보다 우위에 있었던 시절, 소도는 권력의 독점을 막고 사회적 완충 지대를 제공하는 신성한 도피처였던 셈이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 고대의 ‘성역’이라는 단어가 다시금 소환되고 있는 풍경은 자못 씁쓸하다. 최근 모 고등학교 야구부의 5·18 민주화운동 조롱 논란과 이에 따른 중징계, 그리고 이를 둘러싼 이병태 교수의 “5·18이 성역이 됐다”는 발언은 정치권과 우리 사회를 거대한 혼돈(Chaos)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누군가는 역사적 숭고함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처사라 말하고, 다른 누군가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북한식 전체주의의 징후라며 맞선다. 설왕설래가 들불처럼 번지는 이 난장판 속에서, 우리는 성역이 지닌 본질적인 위험성을 목격하게 된다.

 

본래 민주주의 사회에서 성역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존재해서도 안 된다. 모든 권력과 역사적 사건, 심지어 국가적 숭고함조차도 시민들의 자유로운 비판과 합리적인 검증대 위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성역이 늘어날수록, 사회는 이성적인 토론 대신 맹목적인 진영 논리와 감정적인 비난 공세만 남는 카오스 상태, 즉 원시적인 혼돈에 빠지게 된다.

 

5·18 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뿌리를 지탱하는 위대한 역사적 이정표다. 하지만 그 숭고함이 도리어 어떠한 이견이나 질문도 허용하지 않는 현대판 '소도'로 기능하는 순간, 역사는 발전하기를 멈추고 우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진정한 성역화의 역설은 여기서 발생한다. 과거 소도는 죄인을 품어줌으로써 세속 권력의 비정함을 완화했지만, 현대의 인위적 성역은 오히려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들을 ‘죄인’으로 낙인찍고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칼날로 돌변한다.

 

5·18의 정신을 진정으로 계승하고 그것이 지닌 역사적 정당성을 굳건히 견지하고자 한다면, 도리어 그 과정 전체가 국민 앞에 투명하고 명명백백해야 마땅하다. 일각에서 끊임없이 요구하는 ‘5·18 유공자 명단 공개’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기리고 합당한 예우를 다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자 정의다. 그러나 그 명단과 공적의 기준이 베일에 싸여 있다면, 그것은 숭고한 유산이 아니라 특정 진영의 전유물이라는 의혹을 사기 쉽다.

 

당당하고 떳떳한 역사일수록 어둠 속에 숨길 이유가 없다. 국민의 알 권리 앞에 모든 것을 투명하게 밝히는 것만이, 5·18을 둘러싼 소모적인 음모론과 정쟁의 카오스를 종식하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는 지금 혼돈의 시대에 살고 있다. 성역을 만들어 타인의 입을 막으려는 세력과, 그 성역을 무너뜨리기 위해 극단적인 조롱을 일삼는 이들이 부딪히며 사회적 무질서를 심화시키고 있다.

 

고대 삼한의 소도는 신을 향한 순수한 외경심 위에 세워졌지만, 오늘날 정치적 이익을 위해 급조되는 성역은 독선과 오만 위에 세워질 뿐이다.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우주(Cosmos)를 유지하는 힘은 맹목적인 성역이 아니라, 투명한 공개와 자유로운 비판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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