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양심 값도 없어서야
작성일 : 2026.07.07 10:34 수정일 : 2026.07.07 10:43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집 근처 전신주 뒤에 버려진 의자를 처음 본 날보다 더 씁쓸한 것은, 그 의자가 며칠째 같은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흰 좌판에는 환경미화원이 남긴 “6/29 배출, 스티커 5,000원 붙여주세요”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누군가는 이미 해야 할 일을 아주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그런데도 의자는 여드레째 길가에 남아 있다. 의자 하나를 치우는 데 필요한 것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겨우 5천 원이다. 그조차 아까워 책임을 미루는 마음 앞에서, 나는 물건보다 사람이 더 초라해지는 장면을 본다.
5천 원은 요즘 커피 한 잔 값에도 못 미친다. 편의점에서 군것질 몇 가지만 골라도 금세 넘는 돈이고, 배달앱 최소 주문 금액 앞에서는 망설임 없이 지불하는 액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공동체를 위해 쓰는 5천 원은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큰돈이 된다.
내 손에서 나갈 때는 아깝고, 남이 치워줄 것이라 믿을 때는 가벼워지는 돈. 그 얄팍한 계산 끝에 골목은 흉해지고, 불편과 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이웃의 몫이 된다. 돈을 아끼려는 선택 하나가 결국 타인의 시간과 노동, 도시의 품격을 갉아먹는 셈이다.
더 부끄러운 것은 그 의자 위에 이미 누군가의 양심을 일깨우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는 점이다. “스티커 5,000원 붙여주세요”라는 말은 벌금 통지서도 아니고 협박도 아니다. 최소한의 절차를 지켜 달라는 부탁이며, 함께 사는 동네 주민에 대한 마지막 기대다.
그런데 그 짧은 문장마저 외면한 사람은 돈보다 더 많은 것을 버린 셈이다. 그는 낡은 의자만 버린 것이 아니라, 내가 쓴 만큼 책임지겠다는 시민의식과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기본 예의까지 길가에 함께 내던졌다.
양심은 언제나 거창한 순간에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뉴스에 나올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해서 떳떳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는지, 늦은 밤 골목의 소음을 줄이는지, 내가 만든 쓰레기의 끝을 끝내 책임지는지 같은 사소한 대목에서 사람의 바닥이 드러난다.
5천 원을 내느냐 마느냐는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공동체의 규칙을 불편한 짐짝으로 여기는 사람은 결국 타인의 수고를 보이지 않는 공짜 서비스쯤으로 여긴다.
나는 그 의자를 볼 때마다 의자 자체보다 그 주인의 생활 태도를 상상하게 된다. 집 안에서는 오래도록 자신의 몸을 받쳐 주던 물건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쓸모가 다한 마지막 순간, 그 의자는 남의 눈에 덜 띄는 전신주 뒤로 밀려났다.
어쩌면 물건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도 닮아 있을 지 모른다. 필요할 때는 쓰고, 불편해지면 슬그머니 외면하는 마음. 그래서 그 의자는 버려진 가구이면서 동시에 버려진 책임감의 초상처럼 보였다.
사람의 품격은 큰돈 앞에서보다 작은 돈 앞에서 더 정확하게 드러난다. 거액의 기부나 그럴듯한 구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내가 만든 폐기물에 5천 원의 스티커를 붙일 줄 아는 성실함이다.
세상은 거대한 악 때문에만 망가지지 않는다. “이 정도쯤이야” 하고 넘기는 작은 비양심들이 모여 골목을 더럽히고, 타인의 하루를 피곤하게 만들며, 결국 우리 사회의 신뢰를 닳게 만든다.
전신주 뒤 의자에 적힌 5천 원은 그래서 단순한 처리 비용이 아니다. 한 사람이 끝내 지키려 했어야 할 최소한의 양심 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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