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즐거움은 찾는 데 있다
작성일 : 2026.07.10 12:41 수정일 : 2026.07.10 14:01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내가 사는 동네의 행정복지센터 앞에는 작은 간판을 내건 천 원짜리 빵집이 있다. 문을 연 지는 이제 겨우 몇 달 남짓 되었지만, 해가 뜨고 질 때까지 그 문턱을 넘나드는 단골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매일같이 치솟는 물가 속에서 '천 원'이라는 지폐 한 장의 가치가 이토록 묵직하고 따스하게 다가오는 공간이 또 있을까. 오늘도 어김없이 그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고 이끌리듯 문을 열었다.
고소하고 달콤한 빵 냄새가 코끝을 스치자마자 마음속 허기까지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진열대 위에서 나를 반기는 빵들을 보며 아내와 함께 나누어 먹을 생각에 마음이 이내 분주해졌다.
앙증맞은 딸기 그림이 그려진 스위트 딸기케익 빵부터 노란 슈크림이 소담스럽게 얹어진 빵, 달콤하고 부드러운 소프트 땅콩 샌드, 구수한 풍미를 자랑하는 단팥 빵, 그리고 노릇노릇하게 구워져 입맛을 돋우는 피자 빵까지 골고루 다섯 개의 빵을 골라 담았다.
쟁반을 가득 채운 빵들을 계산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품에 안은 검은 비닐봉지가 마치 커다란 보물상자라도 되는 양 마음이 든든했다. 현관문을 열고 아내에게 넌지시 빵 봉지를 건넸더니, 아내의 눈이 동그래지며 여간 반가워하는 게 아니었다.
"이게 다 얼마예요?" 하고 묻는 아내에게 "오천 원의 행복이지!"라며 웃어 보였다. 식탁 위에 펼쳐 놓은 빵과 시원한 아이스 커피 한 잔이 차려지자, 우리 부부의 소박한 오후는 그 어떤 고급 디저트 카페 부럽지 않은 풍요로움으로 가득 채워졌다.
요즘 우리의 삶은 참으로 팍팍하다. 빈부격차가 날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은 연일 치솟는 고물가의 파도 속에서 더욱 깊은 신음을 내뱉고 있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는 말이 농담처럼 돌지만, 서민들의 지갑은 얇아지다 못해 투명해질 지경이다.
유독 찌는 듯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같은 날, 시원한 냉면 한 그릇으로 더위를 식혀볼까 싶어 식당 문을 두드렸다가도 닻을 올린 듯 1만 원을 훌쩍 넘겨버린 가격표를 보면 슬그머니 발길을 돌리게 된다.
한 그릇의 냉면은 이제 평범한 이들에게는 선뜻 다가서기 힘든, 그야말로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어버린 형국이다. 이러한 까닭에 비록 단돈 1천 원짜리 공장형 빵 하나일망정, 그것이 주는 위안의 크기는 결코 가볍지 않다.
시원한 냉수 한 잔을 곁들여 목을 축이고 부드러운 빵 한 조각을 입에 우물거리다 보면, 어느새 뱃속은 금세 든든한 포만감으로 가득 차오른다.
이 포만감은 단순히 신체적인 굶주림을 채우는 것을 넘어, 고단한 하루를 버텨낸 이들의 지친 영혼을 어루만져 주는 따스한 다독임과 같다. 소박하지만 확실한 만족, 이것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허락된 ‘천 원 빵의 위안’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흔히 행복이나 즐거움이 거창하고 화려한 곳에 있을 것이라 믿으며 먼 곳만을 바라보곤 한다. 비싼 외식을 하고, 화려한 옷을 입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야만 삶의 질이 높아진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참된 삶의 즐거움은 거창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아주 작고 낮은 곳에서 스스로 ‘찾아내는 데’ 있다.
길가에 피어난 이름 모를 들꽃 한 송이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천 원짜리 빵 한 봉지에서 부부의 다정한 대화를 꽃피우는 태도야말로 삶을 진짜 즐거움으로 가득 채우는 비결이다.
행복은 주어지는 환경이 아니라, 그것을 발견해내는 시선의 깊이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 빵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려니 문득 마음 한편에 아련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지금은 도시 개발과 세월의 흐름 속에 사라져 자취를 감추었지만, 예전 역전시장 골목 안쪽에는 허름한 천 원짜리 국밥집이 있었다. 뜨거운 뚝배기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던 그곳은 주머니가 가벼운 서민들의 아지트였다.
새벽부터 무거운 짐을 이고 장을 보러 나온 시골 아낙의 고단한 어깨도, 마땅히 갈 곳 없어 거리를 배회하던 노숙인의 헛헛한 속도 그 천 원짜리 국밥 한 그릇 앞에서는 모두 동등하게 따뜻해졌다.
식전부터 북적거리며 서로의 온기를 나누던 그 시절 역전시장 국밥집의 풍경은, 오늘날 우리 동네 행정복지센터 앞 천 원 빵집의 풍경과 묘하게 닮아 있다.
시대를 불문하고 서민들의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은 거창한 거시경제 지표나 정치가들의 화려한 공약이 아니다. 이처럼 삶의 구석진 모퉁이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단돈 몇 천 원으로도 배고픔을 달래고 웃음을 지을 수 있게 해주는 작은 공간들이다.
비록 세상은 고물가와 불황으로 차갑게 얼어붙어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천 원 한 장으로 살 수 있는 따스한 위안이 남아 있다. 식탁 앞에 마주 앉아 빵을 나누어 먹으며 미소 짓는 아내의 얼굴을 바라본다.
거창하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삶의 진정한 즐거움은 바로 지금, 내 손에 들린 천 원짜리 빵 한 조각을 감사히 베어 무는 이 소박한 순간에 살아 숨 쉬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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