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기고

[에세이] 수업과 연설은 짧을수록 좋다

감동이 아니라 몸부림

작성일 : 2026.07.11 10:33 수정일 : 2026.07.11 20:14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 엄동설한의 너른 운동장에서 일장 연설을 하는 교장 선생님 모습을 AI로 생성

 

어제는 유독 마음이 가벼운 금요일이었다. 평일보다 한 과목이 적어 수업이 한 시간 일찍 끝나는 날인 데다가, 마지막 교시를 담당한 분이 학생들 사이에서 ‘존경’의 대상인 국어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존경받는 이유는 명확했다. 수업을 밀도 있게 진행하면서도 어떻게든 비교적 짧고 깔끔하게 마치려 부단히 ‘노력’하시는 분이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어제도 국어 선생님께서는 우리의 간절한 바람을 저버리지 않으셨다. 칠판 가득했던 내용을 정리하신 선생님이 시계를 보더니 환하게 웃으셨다. “이것으로 오늘 수업을 마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고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뵙겠습니다.”

 

그 순간 교실 안에는 보이지 않는 환호성이 일었다. 반장의 구령이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공수(拱手), 선생님께 인사!”

 

두 손을 앞으로 모아 포개어 잡으며 학생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말 안에는 수업에 대한 고마움과 조기 종례에 대한 진심 어린 찬사가 함께 담겨 있었다.

 

학교에서 수업이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끝나는 것만큼 달콤하고 반가운 선물은 없다. 이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만고의 진리다. 배움의 깊이가 반드시 칠판 앞에 머무는 시간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여백을 남겨둘 때 그 가치가 더 빛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짧음의 미학’은 비단 학교 수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와 대비되는 영역이 바로 ‘연설’이다. 학창 시절, 그 추웠던 엄동설한에 전교생을 운동장에 죄다 모아놓고 웅변조로 일장 연설을 토해내던 교장 선생님의 모습이 선하다.

 

손발이 꽁꽁 얼어붙는 아이들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으셨던지 교장 선생님의 마이크 소리는 끝날 줄을 몰랐다. 그때 흘린 눈물과 콧물은 훈화 말씀이 감동적이어서가 아니라, 살려달라는 몸부림에 가까웠다.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장황함의 패러다임이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구습(舊習)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에도 각종 행사장에 가보면 내빈들의 연설, 특히 정치인들의 축사나 격려사는 장황하기 이를 데 없다.

 

이미 앞에서 했던 말의 무한 반복이거나, 영혼 없는 미사여구의 나열일 뿐이다. 듣는 이를 배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웅변은 소통이 아니라 공해에 가깝다.

 

진정으로 말에 무게를 싣는 사람은 시간을 길게 끌지 않는다. 핵심을 찌르는 짧은 한마디가 백 마디 장황한 수사보다 훨씬 더 강렬한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수업이든 연설이든, 핵심을 명확히 전달하고 듣는 이의 마음을 헤아려 과감히 마침표를 찍을 줄 아는 절제가 필요하다.

 

어제 마지막 수업을 서둘러 마쳐 주신 국어 선생님의 배려 덕분에, 우리는 주말이라는 선물을 조금 더 길게 누릴 수 있다. “짧을수록 좋다”라는 명제 속에는, 단순히 시간의 단축을 넘어 상대의 시간과 에너지를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최고의 존중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 공수: 절을 하거나 웃어른을 모실 때, 두 손을 앞으로 모아 포개어 잡음. 또는 그런 자세. 우리 학교에서는 존경의 의미로 학생들이 선생님께 수업 전후에 이런 인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