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열 박사 시사 칼럼
작성일 : 2026.07.21 11:04 수정일 : 2026.07.23 12:26
작성자 : 고무열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험구(險口), 혀끝이 사람을 베다.
Ⅰ. 입은 복의 문이자 화의 근원
예로부터 선현은 "입은 복을 부르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라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을 둘러보면 그 칼을 칼집에 넣기는커녕 시도 때도 없이 휘두르는 이가 부지기수다. 옛날에는 술 한 잔 앞에 두고 얼굴을 붉히며 말다툼했다. 혹여 싸움이 나도 이웃이 말리고, 부끄러움이 남아 며칠이면 화해했었다.
그런데 오늘날은 손바닥만 한 기계를 하나 들고 천 리 밖 사람에게까지 독설을 퍼붓는다. 얼굴은 숨기고 이름도 감춘 채 천하의 재판관이라도 된 듯 남을 꾸짖고, 스스로는 성인군자인 양 행세한다. 붓 대신 자판을 잡았을 뿐, 혀끝의 칼춤은 옛 왈패의 주먹보다도 더 사납다.
Ⅱ. 나이는 들었으나 품격은 실종
더욱 우스운 일은 그러한 이들이 철없는 아이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머리는 희어지고 허리는 굽어도 혀끝만은 스무 살 청년보다 더 날카롭다. 환갑을 넘겨도 남의 허물을 캐고, 칠순이 되어도 댓글 전쟁의 선봉에 서며, 팔순이 되어도 세상을 바로잡겠다며 밤잠을 설친다.
세월은 얼굴에 주름만 새길 뿐, 마음에까지 연륜을 새겨 주지는 않는 모양이다. 나이는 저절로 먹지만 인격은 스스로 닦아야 한다는 옛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나이만 먹으면 그냥 노인이고 품격이 있어야 비로소어르신인 것이다.
Ⅲ. 다름은 죄가 아니라 삶의 방식
사람은 저마다 성품과 기질이 다르다. 예컨대 어떤 이는 제주도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시간 단위로 일정을 짜야 마음이 놓이고, 또 어떤 이는 "가서 바람 부는 대로 걷고, 배고프면 밥 먹고, 바다가 좋으면 하루 종일 바다를 보면 그만 아니요."라며 여유를 즐긴다.
어느 쪽도 틀린 것이 아니다. 다만 삶을 즐기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그런데도 상대를 자기 틀에 끼워 맞추려 하니 여행은 낭만이 아니라 전쟁이 되고, 추억은 웃음이 아니라 한숨으로 남는다. 서로 다름을 이해하지도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Ⅳ. 취향을 재판하는 세상
트로트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발라드를 사랑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내 귀에 좋은 노래만 명곡이고 남이 좋아하는 노래는 천박하다고 손가락질한다면 귀가 고상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옹졸한 것이다. 세상에는 취향의 높고 낮음은 있어도 사람의 높고 낮음은 없다. 남의 취향을 조롱하는 순간 자신의 품격부터 바닥을 드러내는 법이다.
Ⅴ. 정치는 신앙이 아니다.
정치에 이르면 이 병은 더욱 깊어진다.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은 성인(聖人)이 되고, 반대편은 하루아침에 역적이 된다. 진보를 좋아하면 나라를 망칠 사람이라 하고, 보수를 좋게 말하면 적폐요 친일이라 한다. 세상사가 어찌 흑과 백 두 색깔로만 이루어졌겠는가.
사람도 정권도 공과(功過)가 함께 있는 법인데, 좋아하면 모두 옳고 싫으면 모두 틀렸다고 우기는 것은 어린아이가 떼를 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정치는 신앙이 아니며, 정치인은 우상이 아니다.
Ⅵ. 군자는 다름을 품고 소인은 편을 가른다.
공자는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라고 하였다. 군자는 생각이 달라도 함께 살아갈 줄 알지만, 소인은 조금만 달라도 등을 돌리고 적으로 만든다. 오늘날 SNS를 보면 모두가 정의의 칼을 들었다고 착각하지만, 정작 자신을 향한 거울은 하나도 없다. 남을 심판하기 전에 자신의 언행부터 살피는 것이, 군자의 도리이다.
Ⅶ. 독설은 결국 자신을 향한다.
남을 향해 욕하거나 독한 말을 퍼붓는 이는 대개 자신이 정의의 사도라 믿는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악인이 아니라 자기만 옳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런 이는 거울 앞에서는 성인만 만나고 세상에서는 죄인만 본다. 혀는 한 치에 불과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천 리 밖으로 떠나게도 하고, 평생 쌓은 덕을 하루아침에 허무는 무서운 칼이 된다.
Ⅷ. 말의 향기가 인품을 남긴다.
긴 세월을 살았다면 나이만 먹는 것이 아니라 그릇도 함께 커져야 한다.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지혜가 아니라 다름을 품는 것이 지혜이며,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용기가 아니라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용기다.
부디 험한 말로 세상을 고치려 하지 말라. 독설은 상대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지만 결국 가장 깊은 상처는 자신의 품격에 남는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데 인생을 허비하지 말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가치에 더 많은 정성을 쏟으라.
입에서 향기가 나면 사람이 모이고, 입에서 독기가 나면 사람은 떠난다. 이것이야말로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인간사의 이치이며, 군자가 끝내 지켜야 할 품격의 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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