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기고

그리운 외갓집

내 마음의 풍경

작성일 : 2026.07.27 04:06 수정일 : 2026.07.27 09:57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남들에게는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존재, 그러나 나에게 있어 '외갓집'은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거대한 부재(不在)의 공간이었다.

 

한평생을 살아오면서 외갓집 문턱 한번 넘어보지 못했다. 명절이나 방학 때면 외할머니의 푹신한 품과 외삼촌의 용돈, 정겨운 시골집 마당 이야기를 늘어놓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늘 말없이 미소만 지어야 했다.

 

내 유년의 기억 속 외갓집은 존재하지 않는 전설 속 이야기이자, 가슴 한구석을 서늘하게 후벼 파는 아득한 아픔이었고 슬픔이었다.

 

어린 시절 나를 둘러싼 가족사적 질곡은 그리움조차 사치로 만들었다. 남들 다 누리는 그 소소한 ‘외갓집의 특권’을 맛보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고, 나이가 들며 그 비어 있던 자리는 굳은살처럼 마음에 자리 잡았다.

 

결핍은 때로 사람을 시인으로 만들고 글쟁이로 만든다 했던가. 내 글의 뿌리 끝에는 언제나 채워지지 않은 가족에 대한 애증과 그리움의 앙금이 짙게 배어 있다.

 

그런 내가 어느덧 세월을 뛰어넘어 '외할아버지'가 되었다. 그리고 맞이한 올여름,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어린 외손녀가 여름방학을 맞아 외갓집에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손녀를 기다리는 요즘 내 마음은 마치 멈춰 서 있던 옛 간이역처럼, 눈이 빠져라 기차를 기다리는 그리움의 플랫폼이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발을 딛지 못했던 '나의 외갓집'에 대한 한이, 이제는 '손녀가 찾아올 나의 집'이라는 공간으로 치환되며 묘한 떨림을 만들어낸다.

 

손녀가 현관문을 열고 달려와 품에 안길 그 짧은 순간을 위해 집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는다. 손녀가 좋아할 과자를 사다 두고, 조그만 손을 잡고 걸을 동네 산책길을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거닐어 본다.

 

내가 어린 시절 누리지 못했던 그 따스하고 넉넉한 외갓집의 기억... 아무 조건 없이 예쁨받고, 무한한 사랑을 보장받는 그 절대적인 '외갓집의 특권'을 이제는 내가 내 손녀에게 온전히 다 건네주고 싶다.

 

내가 가지지 못해 아팠던 그 아득한 빈자리를, 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빛나는 추억과 사랑으로 채워 넣으려 한다.

 

마침내 도착한 손녀가 아내, 즉 외할머니를 껴안으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연상해 본다. 손녀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거실 가득 퍼질 때, 내 오랜 삶을 짓눌러 온 가족사의 슬픔은 비로소 사르르 녹아내릴 것이다.

 

내 생에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외갓집이, 비로소 오늘 내 마음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으로 완성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