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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시계추와 뷔페식 정치공학 - 민주당의 ‘중도 확장’ 뒤에 숨은 아이러니

고무열의 송곳 칼럼

작성일 : 2026.08.10 01:11 수정일 : 2026.08.10 11:21

작성자 : 고무열 ([email protected])

   고무열 박사(안전교육원 원장)

 

정치의 시계추와 뷔페식 정치공학

- 민주당의 ‘중도 확장’ 뒤에 숨은 아이러니

 

I. 단기적 셈법이 장기적 판세를 가린다.

 

민주당 전당대회를 바라보는 보수 진영의 시선에는 묘한 안도감이 섞여 있다. “정청래가 당을 이끌면 강성 노선 때문에 당정 갈등이 커질 것이고, 그것이 보수에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계산이다. 반대로 김민석 체제가 들어서면 중도 확장을 통해 민주당의 외연이 넓어질 것을 우려한다.

 

그러나 이런 판단 역시 결국 1년짜리 정치공학에 머문다. 정치의 성패는 특정 지도자의 당선 여부나 당장의 지지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정당이 어느 공간을 차지하고 어느 공간을 비워두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정치는 시계추와 같다. 한쪽으로 지나치게 움직이면 언젠가는 반대 방향으로 반동이 일어난다. 오늘의 승자가 내일의 패배를 준비하고, 오늘의 패배자가 내일의 기회를 축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보수가 지금 정청래의 강성 이미지를 보며 안도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것은 민주당이 중도층을 향해 당의 공간을 얼마나 넓힐 것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유권자와 어떤 정치적 의제를 밖으로 밀어낼 것인가다.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적의 강함이 아니다. 적이 비워놓은 공간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II. 공간이 넓어지면 경쟁자도 들어온다.

 

1990년 3당 합당은 한국 정치에서 거대한 정치 공간 재편의 대표적 사례다.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이 합쳐져 민주자유당이 탄생했고, 이 합당은 이후 한국 정치의 권력구조와 지역 정치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쳤다.

 

중요한 것은 합당 자체의 옳고 그름이 아니다. 정치적 연합이 공간을 넓히는 순간, 그 공간은 결코 한 세력의 전유물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거대한 정당이 중간 지대를 차지하면 당장은 강해진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기존의 정치적 갈등과 가치, 유권자의 불만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당 내부에서 흡수하지 못한 요구는 새로운 조직과 인물을 찾아 밖으로 흘러 나간다.

 

정치에는 ‘공백의 법칙’이 있다. 비워진 공간은 오래 비어 있지 않는다. 중도층을 확보하기 위해 정당이 좌우의 경계를 허물면, 그 경계 밖에 있던 유권자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적 선택지를 찾는다. 이것이 거대 정당의 외연 확장이 가진 역설이다. 즉, 영토를 넓히는 순간, 기존의 경계선도 함께 무너진다.

 

III. 블레어의 성공이 남긴 불편한 교훈

 

이 현상을 가장 흥미롭게 보여주는 해외 사례가 영국 노동당이다. 토니 블레어는 1990년대 노동당을 ‘뉴 레이버(New Labour)’로 바꾸며 전통적인 노동계급 정당의 이미지를 탈피했다. 시장경제의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이른바 ‘제3의 길’을 내세웠다. 노동당은 18년간의 야당 생활을 끝내고 1997년 압승했고, 이후 2010년까지 집권했다. 블레어의 성공은 분명했다.

 

그러나 성공의 이면도 있었다. 노동당이 중도층을 확보하기 위해 당의 전통적인 좌파적 색채를 약화시키자, 노동당 내부와 영국 정치권에는 새로운 좌파적 공간이 생겨났다. 훗날 제러미 코빈이 노동당 대표가 된 것은 그 공백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이것을 단순히 “블레어가 좌파 공간을 비웠기 때문에 코빈이 등장했다”라고 설명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금융위기, 불평등, 긴축정책, 이라크전쟁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했다.

하지만 한 가지 교훈은 분명하다. 정당이 자신의 전통적 유권자와 가치를 일부 포기하고 새로운 중도층을 확보할 때, 포기한 공간은 자동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 공간에는 언젠가 새로운 정치적 주체가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IV. 민주당의 중도 확장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현재 민주당이 경제성장과 첨단산업, AI, 기업 투자와 같은 의제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집권당이라면 국정 운영의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26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주요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강한 성적을 거두며 전국적 기반을 확대했지만, 서울에서는 보수 후보가 승리하는 등 중도·부동층의 선택 가능성 역시 여전히 존재한다.

 

문제는 ‘성장과 실용’을 말하는 것,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민주당의 새로운 정체성이 될 것인가, 아니면 선거를 위한 전략적 외피에 그칠 것인가​다. 중도 확장은 성공적인 선거 전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정당은 결국 자신이 누구를 대표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모든 유권자를 만족시키겠다는 식의 ‘뷔페식 정치’는 선거 때는 매력적일 수 있지만, 집권 이후에는 정책의 우선순위와 정체성 문제에 부딪힌다. 좌파의 가치를 버리지 않으면서 중도를 끌어안을 것인가. 아니면 중도층을 얻기 위해 전통적 지지층의 일부를 과감히 내려놓을 것인가. 이 선택에 따라 한국 정치의 다음 지형이 달라진다.

 

V. 보수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김민석’이 아니다.

 

보수의 시선이 달라져야 한다. 민주당이 중도 확장을 시도하는 것이 보수에 반드시 악재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민주당이 중도를 향해 이동한다면 보수에는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 단, 조건이 있다. 보수 역시 오른쪽 끝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민주당이 중앙으로 이동하는데 보수가 기존의 강성 지지층만 바라본다면, 정치적 중심축은 자연스럽게 민주당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반대로 보수가 중도층의 언어와 민생의 요구를 제대로 담아낸다면 민주당이 비워놓은 공간을 선점할 수 있다.

 

정치에서 가장 어리석은 전략은 상대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박수치는 것이다. 상대가 움직였다면 그가 비운 자리를 먼저 봐야 한다. 정청래의 강성이 보수에 유리하다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중도층을 향해 이동할 경우 보수가 어떤 유권자를 새롭게 끌어올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VI. 시계추에는 정지 버튼이 없다.

 

결국 이번 민주당의 노선 변화는 특정 인물의 당권 경쟁만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정청래식 정치가 당의 정체성과 기존 지지층을 결집하는 전략이라면, 중도 확장은 민주당의 외연을 넓혀 더 많은 유권자를 흡수하려는 전략이다.

 

둘 중 어느 것이 당장 선거에서 더 유리한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민주당이 중도를 차지한 뒤, 그들이 비워놓은 공간은 누가 차지할 것인가.

 

그곳에 새로운 진보정당이 들어설 수도 있다. 새로운 중도정당이 등장할 수도 있다. 기존 보수가 쇄신에 성공해 그 공간을 차지할 수도 있다. 혹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할 수도 있다. 정치의 역사는 늘 그렇게 움직였다.

 

정당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공간을 넓힌다. 그러나 공간을 넓히는 순간 새로운 경계가 만들어지고, 그 경계 밖에서 또 다른 정치가 시작된다. 민주당의 중도 확장은 지금 당장은 ‘확장’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5년 뒤, 10년 뒤에는 그것이 한국 정치의 새로운 균열을 만들어낸 출발점으로 평가될 수도 있다.

 

Ⅶ. 정치는 고정된 좌표가 아니다. 시계추다.

 

오늘 중앙을 차지한 세력이 내일도 중앙에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오늘 밀려난 세력이 영원히 변방에 머물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따라서 지금 보수가 해야 할 일은 민주당의 어느 지도자가 더 유리한지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다.

 

Ⅷ. 민주당이 움직인 뒤 비워질 정치적 공간을 먼저 찾아야 한다.

 

그 공간을 차지할 준비가 되어 있는 세력이 다음 정치의 주인이 된다. 결국 향후 10년의 승부는 오늘의 전당대회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누가 먼저 내일의 빈자리를 발견하고, 그곳에 자신의 깃발을 꽂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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