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의 뜻 정의로 이어가야
작성일 : 2026.08.13 08:01 수정일 : 2026.08.13 09:36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배우 하영의 가족사 공개 이후 증조부 안상호의 일제강점기 행적을 둘러싸고 친일 의혹이 제기됐다는 소식은, 한 사람의 유명세를 넘어 가족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했다. 사실관계의 전모가 모두 확인된 것은 아니기에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과거의 행적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당사자가 가족의 역사를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보게 되었다고 밝힌 일은 우리에게 한 가지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가족의 자랑스러운 이력만 기억하고 싶은가, 아니면 불편하고 어두운 대목까지 함께 마주할 용기가 있는가.
가족사는 흔히 기념할 만한 이야기로 전해진다. 몇 대째 이어온 직업, 이름난 학교, 사회적 명망, 역사적 인물과의 인연이 집안의 자부심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 시대를 살아간 사람의 삶은 언제나 한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처럼 선택의 자유가 크게 억눌리고 생존의 조건이 가혹했던 시대에도 사람들은 각자의 선택을 했다. 어떤 이는 독립을 위한 삶을 걸었고, 어떤 이는 침묵했으며, 또 어떤 이는 식민 권력과 손을 잡았다.
그 선택의 무게를 오늘의 기준으로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기록을 지우거나 미화할 이유도 없다. 역사 앞에서 필요한 것은 맹목적인 자랑이 아니라 자료를 확인하고, 서로 다른 기록을 대조하며, 잘못이 드러났을 때 인정하는 태도다.
이 지점에서 영화 「암살」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영화는 친일 세력의 핵심 인물을 처단하려는 독립군의 작전을 중심으로, 해방을 앞둔 시대의 긴장과 배신,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결기를 그린다.
물론 영화의 서사는 사실의 기록과 허구적 상상력이 결합한 것이지만, 그 안에 담긴 질문만큼은 오늘에도 선명하다. 나라를 빼앗긴 시대에 누가 어떤 편에 섰는가. 해방된 뒤 우리는 그 선택을 어떻게 기억하고 평가했는가.
그리고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이름과 책임은 없는가. 「암살」은 통쾌한 복수극으로만 머물지 않고, 광복이 단지 국권을 되찾은 하루가 아니라 정의를 다시 세우는 긴 과정임을 일깨운다.
광복절은 그래서 단순히 태극기를 다는 기념일이 아니다. 1945년 8월 15일의 해방을 기억하는 날인 동시에, 빼앗긴 말과 이름과 존엄을 되찾기까지 견뎌낸 사람들을 기리는 날이다.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기억하는 일, 친일 행적을 둘러싼 기록을 정확하게 살피는 일, 후손에게 역사를 미화하지 않고 온전히 가르치는 일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광복의 뜻을 오늘에 이어가는 방법은 거창한 구호보다 사실을 사실대로 부르는 데서 시작된다.
누군가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공과를 뒤섞지 않고, 공적은 공적대로 기리고 과오는 과오대로 성찰하는 태도가 우리 사회의 기억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
올해 광복절을 앞두고 ‘해염(解炎)’이라는 말을 마음에 새겨 본다. 해염은 본래 ‘불길을 푼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지만, 여기서는 지독하고 오래 이어진 폭염으로부터 벗어나는 해방의 감각을 가리키는 말로 쓰고자 한다.

뜨거운 공기가 멈추고 밤의 열기가 조금씩 가라앉을 때, 우리는 비로소 계절에도 출구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역사에서의 해방이 오랜 억압을 끝내고 새로운 시간을 여는 일이라면, 계절의 해염은 달아오른 몸과 마음이 다시 숨을 고르는 작은 광복이다.
‘장마라도 나무말미 빨래말미는 있다’는 우리말은 삶의 어려움 속에도 잠깐의 틈과 볕이 찾아온다는 뜻을 품고 있다. 장대비가 계속될 것 같아도 나무를 말릴 때가 있고, 젖은 빨래를 널어 말릴 때가 있다.
역사도 이와 닮았다. 어둠이 길었다고 해서 빛이 없었던 것은 아니며, 억압이 거셌다고 해서 저항의 마음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독립을 위해 이름 없이 견딘 사람들의 시간은 언제나 짧은 나무말미와 빨래말미를 찾아냈고, 그 작은 틈들이 모여 마침내 ‘광복’이라는 큰 날을 만들었다.
새벽과 아침에 집 밖으로 나서면 건들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첫가을에 선들선들 부는 그 바람에는 여름의 끝을 알리는 부드러움과 앞으로 올 계절에 대한 기대가 함께 들어 있다.
뜨거움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은 역사를 돌아보는 마음과도 이어진다. 우리는 과거를 지워서 시원해지는 것이 아니라, 아픈 기록을 정확히 마주하고 다시는 같은 억압이 반복되지 않도록 할 때 비로소 가벼워진다.
개인의 가족사에 드리운 의혹과 논란도 마찬가지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소문으로 키워서는 안 되지만, 제기된 질문을 불편하다는 이유로 덮어서도 안 된다.
광복절의 태극기 아래서 우리는 서로 다른 해방을 함께 생각할 수 있다. 나라를 되찾은 역사적 해방, 침묵과 미화에서 벗어나 진실을 말하는 사회적 해방, 그리고 폭염의 긴 터널을 빠져나와 건들바람을 맞는 계절의 해방이다.
‘해염’은 그 세 가지 감각을 한데 묶는다. 해방은 과거의 어느 날 완성된 사건이 아니라, 오늘도 기억하고 묻고 바로잡는 사람들의 노력 속에서 계속되는 현재형이기 때문이다.
이번 광복절에는 자랑스러운 이름만이 아니라 부끄러운 이름도 역사 속에 함께 놓아 보자. 그것이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음 세대가 더 정직한 출발선에 서도록 하기 위해서다.
오래된 불길에서 벗어난 자리에는 맑은 공기가 필요하고, 맑은 공기 속에서는 감춰 두었던 것들도 제대로 보인다. 장마 뒤의 볕과 건들바람을 맞으며, 다시 다짐한다.
기억하되 미화하지 말 것, 의혹은 사실 확인의 과정 속에서 다룰 것, 그리고 광복의 뜻을 일상의 정의로 이어 갈 것. 그때 비로소 해염은 계절의 시원함을 넘어, 우리 모두의 마음을 씻어 내는 새로운 광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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