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열의 송곳 칼럼
작성일 : 2026.08.15 03:21 수정일 : 2026.08.15 12:57
작성자 : 고무열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5·18민주화운동은 성역도, 정치적 방패도 아니다.
- 이진숙 의원의 5·18 재조명이 던지는 질문과 유공자 공적 공개의 필요성
Ⅰ. 다시 5·18을 말해야 하는 이유
역사는 박제하는 순간 죽는다. 살아 있는 역사는 끊임없이 질문받고, 토론되고, 새로운 자료와 증언에으로 재조명되어야 한다. 5·18 민주화운동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5·18이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요한 민주화운동이라는 사실과, 그 역사적 과정과 세부 사실에 대해 자유롭게 검증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서로 모순되는 명제가 아니다. 현행 5·18진상규명법 자체가 당시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암매장 등에 관한 진실을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즉 5·18은 이미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 대상이며,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검증과 논의 자체를 금기시할 이유가 없다.
이진숙 의원을 둘러싼 최근의 5·18 관련 논란 역시 이런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특정 인사의 발언에 동의하느냐와 별개로, 역사적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자는 문제 제기 자체를 곧바로 금기시하거나 정치적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정신에 어긋난다.
Ⅱ. 역사적 사건은 성역이 아니라 검증의 대상
5·18 희생자들의 고통과 희생을 폄훼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희생자를 존중하는 것과 역사에 대한 모든 질문을 금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역사적 사건은 추모의 대상인 동시에 연구와 검증의 대상이다. 새로운 자료가 나오면 검토하고, 기존의 설명에 의문이 있다면 질문하고, 서로 다른 견해가 있다면 공개적으로 토론해야 한다.
오히려 역사적 사실에 자신이 있다면 질문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진실은 토론을 통해 더욱 단단해진다.
따라서 5·18을 재조명하자는 주장을 무조건 ‘역사 왜곡’으로 규정하고 입을 막으려는 태도 역시 경계해야 한다. 역사에는 성역이 있을 수 없다. 성역이 되는 순간 역사는 정치적 신앙이 되고, 정치적 신앙이 되는 순간 사실에 대한 검증은 사라진다.
Ⅲ. 5·18 유공자의 공적은 왜 세밀하게 공개하지 못하는가?
여기에서 국민이 제기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나온다. 5·18민주유공자에게 국가가 예우와 지원을 하는 것은 법률에 근거한 제도다. 현재 법률과 국가보훈부 제도에 따라 교육지원, 취업 지원 등 여러 예우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의 세금과 국가의 행정력을 통해 예우하는 유공자라면, 최소한 어떤 공적과 어떤 사실관계에 의해 유공자로 인정됐는지 국민이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개인정보 보호라는 법적 원칙도 존중해야 한다. 따라서 무조건적인 개인정보 전면 공개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이름 공개의 법적 범위와 함께 유공자로 선정된 사유, 공적 내용, 심사 기준, 심사 절차, 국가가 확인한 객관적 자료 등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투명하게 공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국가보훈부 역시 5·18민주유공자 등록과 확인 절차를 운영하고 있다. 정부24를 통해 유공자 또는 유족임을 확인하는 행정서비스도 존재한다.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공적이 분명한 사람은 더욱 당당하게 공개하고, 그 희생과 공로를 제대로 평가받게 하자는 것이다.
공적이 명확하다면 공개가 오히려 명예를 높인다. 반대로 선정 과정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바로잡는 것이 진정한 국가의 예우다.
Ⅳ. 5·18 정신만 헌법 전문에 담아야 하는가?
또 하나의 중요한 논쟁이 있다. 헌법 전문에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명시하자는 주장이 있다. 5·18의 민주주의적 의미를 헌법적 가치로 검토하는 것 자체는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 그러나 헌법 전문을 개정한다면 특정 사건 하나만을 중심에 놓기보다는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한 여러 역사적 사건과 그 정신을 함께 살펴야 한다.
4·19혁명, 5·18민주화운동뿐만 아니라 6·3 민주항쟁 등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사건들이 있다. 동시에 대한민국의 존립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낸 6·25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비극도 있다.
헌법은 특정 정치세력의 역사관을 새겨 넣는 문서가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어떤 역사적 경험을 통해 오늘의 헌정질서를 만들었는지를 포괄적으로 담아내는 국가의 기본 정신이어야 한다.
따라서 헌법 전문을 논의한다면 4·19, 5·18, 6·3 등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적 사건과 6·25전쟁과 같은 국가 존립의 역사까지 균형 있게 성찰하는 것이 마땅하다.
Ⅴ. 이진숙 의원을 제명한다고 역사가 사라지는가?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역사에 대한 이견을 정치적 징계로 해결하려는 태도다. 이진숙 의원의 5·18 관련 발언이나 역사관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다. 언론도 비판할 수 있고, 정치권도 논쟁할 수 있으며, 시민사회도 반대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의 문제 제기 자체를 이유로 의원직 제명과 같은 정치적 압박을 가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자유도 존중되어야 하고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상대방도 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도, 존중되어야 한다. 특히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강조해야 할 정치권이 역사적 사건에 대한 재조명과 문제 제기를 정치적 징계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매우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
오늘은 5·18에 대한 질문을 금지하고, 내일은 4·19에 대한 다른 해석을 금지하고, 그다음에는 6·25에 대한 다른 평가까지 금지한다면 대한민국에서 자유로운 역사 토론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Ⅵ. 미워하는 의견을 처벌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퇴보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상대방의 입을 막는 것이 아니라 논리로 설득하는 것이다. 5·18을 폄훼한다고 판단된다면 자료를 제시해 반박하면 된다. 사실과 다른 주장이 있다면 사실관계를 밝혀 국민에게 판단을 맡기면 된다. 그것이 참 민주주의다. 정치적 제명이나 압박으로 논쟁을 끝내려는 순간, 오히려 그 사건은 더 정치화된다.
5·18의 역사적 가치가 진정으로 위대하다면 더 많은 질문을 견뎌야 한다. 더 많은 연구를 견뎌야 하고, 더 많은 토론을 견뎌야 한다. 진실은 정치적 보호막이 없어도 충분히 살아남는다.
Ⅶ. 성역 없는 역사가 국민통합을 만든다.
5·18을 기억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기억하자는 것이다. 희생자는 정당하게 추모하고, 공적은 투명하게 검증하며, 잘못된 사실은 바로잡고, 역사적 의문은 자유롭게 제기해야 한다. 유공자의 공적 내용과 선정 과정도 국민이 이해할 수 있도록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5·18을 정치적 진영의 전유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5·18은 특정 정당의 소유물이 아니다. 민주주의 역시 특정 정치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다. 역사를 정치적 방패로 사용하는 순간 그 역사의 숭고함은 오히려 훼손된다. 반대로 역사를 자유롭게 연구하고 검증할 수 있도록 할 때 역사적 진실은 더욱 굳건해진다. 5·18은 성역이 아니다. 그렇다고 함부로 폄훼해서도 안 된다.
존중하되 검증하고, 추모하되 질문하고, 기억하되 정치적으로 독점하지 않는 것. 그것이 성숙한 민주주의이고, 대한민국이 과거의 상처를 넘어 진정한 국민통합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역사를 두려워하는 정치가 아니라 역사에 당당히 질문할 수 있는 자유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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