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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자랑 함부로 하지 말아야

[칼럼] 독립운동가와 빈곤의 악순환 유감

작성일 : 2026.08.17 06:44 수정일 : 2026.08.17 07:58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치고 말년에 큰 고생을 치렀던 우당 이회영 선생

 

최근 연예계에서 불거진 모 여배우의 선조 친일 행적 논란은 대중에게 씁쓸한 입맛을 남겼다.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4대째 의사 집안’이라며 자랑스럽게 가문의 내력을 소개했으나, 돌아온 것은 증조부의 과거 친일 이력에 대한 자각과 대중의 차가운 시선이었다.

 

가문의 영광이라 믿고 꺼내든 카드가 결과적으론 누워서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격이 된 셈이다. 그러나 이 해프닝은 단지 개인의 부주의나 일시적인 이슈로 치부할 수 없다.

 

우리 사회 내부에서 오랫동안 외면받아 온 ‘친일의 부(富)와 독립의 빈곤’이라는 비대칭적 유산의 고리를 다시금 들춰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기득권층이 재산을 축적한 방식과 독립운동가들이 걸었던 희생의 길은 대척점에 서 있다.

 

대표적 친일 거부였던 일명 ‘공주 갑부’ 김갑순의 사례는 부끄러운 역사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관찰사나 군수 등의 직책을 이용해 일제의 수탈 정책에 적극 협조한 그는, 일제가 추진하던 철도 부지나 개발 예정지 정황을 미리 파악해 부동산 투기를 일구었다.

 

김갑순은 민족의 고통을 자산 삼아 충남 일대의 수많은 토지를 차지하며 막대한 부를 쌓아 올린 전형적인 친일 자본가의 모습이었다. 반면, 삼한갑족(三韓甲族)의 명문가 출신이었던 우당 이회영 선생과 6형제의 삶은 정반대의 궤적을 그린다.

 

국권을 빼앗기자 이들 형제는 가문의 전 재산을 급히 처분했다. 당시 가치는 현재 기준으로 약 600억 원에서 1,000억 원에 달하는 거액이었다. 그들은 이 막대한 재산을 들고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독립군을 양성하는 데 전부 바쳤다.

 

그러나 헌신과 희생의 대가는 혹독했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재산이 완전히 탕진되자 이회영 선생의 일가는 끼니조차 잇기 힘든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다. 우당 선생은 옥사하였고, 그의 후손들은 해방 이후에도 빈곤과 교육 기회 박탈이라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 대표적 친일파 공주 갑부 김갑순의 후안무치한 모습을 AI 이미지로 생성

 

이러한 두 인물의 극명한 대비는 해방 후 대한민국이 해결하지 못한 역사적 부채를 상징한다. 친일파들의 부(富)는 자식들의 해외 유학, 고등 교육, 전문직 진출로 이어지며 3대, 4대에 걸쳐 세습되었다.

 

반면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던진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부모의 부재와 극심한 가난 속에서 사회 하층부로 내몰렸다.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비극적인 속설은 가설이 아닌 현실의 역사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가문의 내력을 자랑하려다 되려 친일 논란에 휩싸인 최근의 모 여배우 사건은, 바로 이 비틀린 유산의 고리를 가시적으로 보여준 단면이다. 이는 또한 가문의 부와 명예가 과연 어떠한 토대 위에서 쌓였는가를 되짚어보지 않은 자만심이 불러온 결과다.

 

광복의 진정한 의미를 재정립하는 일은 단지 기념일에 국기를 게양하는 일에 그쳐서는 안 된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겪고 있는 빈곤의 악순환을 국가적 차원에서 끊어내고, 불의하게 축적된 친일 잔재에 대한 역사적·법적 평가를 엄정히 확립하는 것이야말로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다.

 

지나간 역사를 바로 보는 상식과 성찰이 부재할 때, 가문의 자랑은 언제든 스스로를 향한 화살이 되어 돌아올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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