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지 못한 사람은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더 불안하다
작성일 : 2026.08.18 06:10 수정일 : 2026.08.18 08:16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최일남 작가의 단편 소설 《노새 두 마리》는 1970년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그늘 아래 살아가던 도시 빈민의 고달픈 삶을 생생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소설의 화자인 어린 아들 ‘나’의 눈으로 바라본 아버지는, 마차에 연탄을 싣고 가파른 언덕길을 힘겹게 오르는 인물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생계의 유일한 수단이었던 짐승 노새와 시대의 빠른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아버지는 결국 같은 모습의 ‘두 마리 노새’였다.
눈길에 미끄러지는 마차를 끌며 안간힘을 쓰다 끝내 노새를 놓쳐버리고, 도망친 노새가 일으킨 사고의 배상 책임마저 안게 된 아버지의 무거운 어깨는 당시 민초들의 절망을 대표한다.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이 소설을 다시 읽으며 마음에 가장 깊게 닿는 문장은 “갖지 못한 사람은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더 불안하다”라는 명제다.
소설 속 1970년대의 풍경과 2020년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의 모습 사이에는 놀라울 정도의 기시감(데자뷔)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의 외형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사회적 부는 비할 바 없이 커졌지만, 정작 거대한 변화의 톱니바퀴 아래에서 서민들이 느끼는 삶의 불안과 소외감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1970년대의 아버지가 삼륜차와 트럭이 오가는 도로 위에서 구식 노새 마차를 몰며 위기감을 느꼈다면, 현대의 서민들은 AI, 디지털화, 플랫폼 노동 등 눈부시게 몰아치는 기술과 경제적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오토바이나 차량으로 배달 길에 나서는 수많은 라이더와 비정규직 노동자, 벼랑 끝으로 몰리는 자영업자들의 모습은 50년 전 연탄 마차를 끌던 아버지의 초상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작은 충격이나 악재 하나에도 생계 전체가 흔들리는 불안정한 삶의 구조는 과거나 지금이나 고스란히 되풀이되고 있다.
자산을 가진 사람들에게 미래는 또 다른 기회와 더 확장된 성공의 영역일지 몰라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불투명한 미래는 그 자체로 생존을 위협하는 공포다. 최소한의 안전망이나 자산적 버팀목이 없는 서민들은 작은 불확실성 앞에서도 더 크게 동요하고 더 가혹한 불안에 시달린다.
소설 속 아버지가 달아난 노새를 찾으러 헤매면서도 경찰서에서 날아올 손해배상 청구서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서민들 역시 물가 상승, 금리 변동, 고용 불안이라는 또 다른 '달아난 노새'를 쫓으며 매일 밤 불확실한 내일을 두려워한다.
반세기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기술은 진보하고 도시의 빌딩은 크게 높아졌지만, 소외된 서민들의 삶을 지탱하는 사회적 온기나 미래에 대한 확신은 여전히 희미하다.
《노새 두 마리》가 우리에게 던지는 울림이 지금도 유효한 이유는, 물질적 풍요의 그늘 뒤에 잊힌 서민들의 고단함과 불안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시대를 뛰어넘어 반복되는 이 쓸쓸한 데자뷔 앞에서, 우리는 과연 소외된 이들의 불안한 미래를 온전히 안아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지 깊이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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